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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70년 전 ‘10월 항쟁’

등록 2016-09-29 19:50수정 2016-09-29 22:43

현대 민중항쟁의 원형 ‘10월 항쟁’
현대사·사회운동 연구자 김상숙
국가폭력과 지역 피해자 시선 복원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경찰 발포 현장 사진에는 거리 한쪽에 장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엄폐물 뒤에 쪼그려 앉아있고 반대편 피신한 시위 군중 쪽에는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10월2일 대구역 발포로 사망한 피살자 21명은 남성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노동조합원이 아닌 미조직 대중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저자는 분석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경찰 발포 현장 사진에는 거리 한쪽에 장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엄폐물 뒤에 쪼그려 앉아있고 반대편 피신한 시위 군중 쪽에는 여러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10월2일 대구역 발포로 사망한 피살자 21명은 남성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노동조합원이 아닌 미조직 대중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저자는 분석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0월 항쟁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김상숙 지음/돌베개·1만7000원

그동안 봉인되었던 ‘10월 항쟁’을 다룬 역작(力作)이 나왔다. 이름도 무덤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에 관한 생생하면서도 체계적인 종합 보고서다. 오는 1일 70주년을 맞아 항쟁의 주역이면서 가장 많이 희생된 진보운동의 한 세대에게 바치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 <10월 항쟁>의 지은이 김상숙은 기록을 바탕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한국전쟁 전후 학살당한 민간인 수가 1만5000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 학살은 직간접적으로 10월 항쟁에 연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46년 9월23일 부산에서 철도파업이 시작된 뒤 전역에서 총파업이 일어났다. 대구에서는 총파업과 시민대회 진압도중 10월1일 노동자가 경찰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 시위’가 벌어지고 삽시간에 노동자총파업이 시민항쟁으로 확대되었다. 청년과 학생들이 앞장을 섰다. 미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항쟁을 진압했지만 대구뿐 아니라 영천, 선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농촌에도 항쟁이 들불처럼 번졌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10월 항쟁은 친일파 처단과 토지개혁, 쌀 배급과 잘못된 공권력 행사 중단을 요구하는 민중의 아우성으로서 나라 전역에서 펼쳐진 시민 항쟁이었다. 1946년 10월부터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역 73개 시군에서 일어나 동학농민항쟁, 3·1항쟁과 함께 이 땅의 3대 민중 항쟁 중 하나로 꼽힌다.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거리에서 장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오가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거리에서 장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오가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책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이 보관중인 대구 항쟁 피살자 사진과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굴한 1960년 대구 달서구 본리동 유해 발굴 현장 사진 등 당시 잔혹한 학살현장 사진이 여럿 실렸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946년 10월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책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이 보관중인 대구 항쟁 피살자 사진과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굴한 1960년 대구 달서구 본리동 유해 발굴 현장 사진 등 당시 잔혹한 학살현장 사진이 여럿 실렸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노동자뿐 아니라 지주, 지식인, 학생, 청년, 농민이 대거 참여해 규모도 컸지만 목표 지향도 뚜렷했다. ‘토지개혁’과 ‘평등세상’이라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저항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선산 인민위원회 간부였던 박상희(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도 항쟁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학살되었다. 하지만 이 역사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저자는 이렇게 그동안 학계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고 국가 차원에서도 명확하게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던 ‘1946년 10월1일과 10월2일 대구에서의 경찰 발포 사건’을 파헤친다. 피살자의 신원, 시신 시위의 조직과정, 시위 지도부의 성격, 노동자 파업이 시민항쟁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미군 문서와 당시 언론보도자료 및 관련자 구술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서술한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10월 항쟁 진압을 위한 대구와 인근 지역 경찰력 배치 상황을 기록한 1946년 10월4일의 미군 문서.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10월 항쟁 진압을 위한 대구와 인근 지역 경찰력 배치 상황을 기록한 1946년 10월4일의 미군 문서.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돌베개 제공
지은이가 직접 피살자 수백명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고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만난 지역민 400여명의 방대한 구술과 면담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했기에, 독자들은 사건사와 인물사 이면에 있는 지역민의 실제적 경험과 피해자의 시선을 이해하면서 무명 청년 활동가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아래로부터의 역사 연구’는 성공적이다. 증언자 대부분 세상을 떠난 지금, 10월 항쟁에 대한 이 정도의 구술사는 앞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이유다.

이뿐 아니라 책은 당시 인구 대다수가 살고 있던 농촌 농민항쟁의 특징, 10월 항쟁 이후 대구·경북 지역의 사회운동사, 한국전쟁 전 빨치산의 활동과 대중운동의 관계, 지역내전이라는 장기항쟁으로의 전화와 지역 내 이중권력의 존재, 민간인 학살과 국가권력의 토대 강화 과정(특히 보수세력의 조직화 과정) 등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도 잘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사용한 표현들—기층 민중의 사회적 트라우마, 전통적 농민항쟁의 전승이자 현대 민중항쟁의 원형, 야산대에서 유격대로, ‘산사람’과 ‘들군’, 엘리트로 이뤄진 ‘빨갱이 고수’와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한 ‘지방 빨갱이’ 등—은 매우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영천경찰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전 5권, 1979) 중 5-1, 처형자 명부 컴퓨터 입력 자료. 진실화해위원회,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2009), 돌베개 제공
영천경찰서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전 5권, 1979) 중 5-1, 처형자 명부 컴퓨터 입력 자료. 진실화해위원회,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2009), 돌베개 제공
올해 7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말 대구에서는 10월 항쟁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오는 1일 오후에는 전국노동자대회와 시민문화제도 대구 중구 태평로를 비롯한 대구 시내에서 열린다. 더군다나 얼마 전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때의 물대포 피해자인 백남기 농민이 영면해 같은 날 서울에서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정권을 규탄하고 총파업을 지지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세월호참사 900일째 되는 날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10월 항쟁>을 읽으면서 이번 역사는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중을 위한 새로운 나라 건설의 계기가 되는 새로운 ‘10월 항쟁’이 되기를.

임순광/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전 10월항쟁특위 위원장

임순광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전 10월항쟁특위 위원장
임순광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 전 10월항쟁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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