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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어설프게 배제하면 정당성만 키워줄 뿐”

등록 2016-10-13 19:28수정 2016-10-13 20:07

유럽서 대약진, 한국도 여건은 충분 “시민교육·진지한 토론으로 맞서야”
원인·대책 논의 한-독 국제학술회의
지난 6일 고려대에서 열린 ‘포퓰리즘·정당민주주의·시민교육’ 주제 국제학술회의. 윤정인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왼쪽 첫째), 게로 켈러만 박사(둘째), 옌스 휴트만 박사(네번째)  박성관 사진가 제공
지난 6일 고려대에서 열린 ‘포퓰리즘·정당민주주의·시민교육’ 주제 국제학술회의. 윤정인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왼쪽 첫째), 게로 켈러만 박사(둘째), 옌스 휴트만 박사(네번째) 박성관 사진가 제공
독일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지난 9월18일 치러진 독일 베를린주 의회 선거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의 대약진으로 심대한 충격을 던졌다. 전후 독일 정계를 양분해온 기독교민주연합(CDU)과 사회민주당(SPD)이 각각 17.6%, 21.6%를 득표한 이번 선거에서 ‘반난민·반이민’을 내세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4.2%를 얻어 제3당으로 약진한 것이다. 나치 시대를 겪은 독일에선 “정당 형태의 우파 포퓰리즘이 광범위하게 정착되지 못할 것”(프랑크 데커 프리드리히-빌헬름대 정치학 교수)이라던 학계 일반의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갔다. 독일연방 16개 주 가운데 10개 주 의회에 진출한 아에프데는 내년 9월 총선에서 연방 의회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다.

바야흐로 포퓰리즘의 시대다. 영국독립당(UKIP)은 자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이끌었고, 그리스 시리자는 이미 집권해 있다. 프랑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 펜은 내년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스페인 포데모스(Podemos)도 창당 2년 만에 원내 제3당으로 부상했다.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에선 우파 포퓰리즘 또는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 미국 대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도 포퓰리스트로 분류된다.

포퓰리즘의 득세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포퓰리즘이 발생하게 되는 보편적 원인과 각국 사례를 종합해 볼 때 한국은 포퓰리즘이 활성화되기 쉬운, 다시 말해 포퓰리즘의 영향에 매우 취약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윤정인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헌법학)

이런 문제의식에서 독일과 유럽의 선례를 검토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포퓰리즘·정당민주주의·시민교육’ 주제 국제학술회의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헌법이론실무학회 공동 주최로 지난 6일 열렸다.

첫 발제를 맡은 게로 켈러만 박사(정치교육아카데미)는 대부분의 포퓰리즘 운동은 주권자인 국민과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들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가령 “시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관료제적이고,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유럽연합의 ‘비호감’을 주는 태도는 대량 난민사태의 불확실성과 결합하면서 포퓰리즘의 발호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 국가도 다르지 않다. 기성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인민)의 불만과 분노는 포퓰리즘의 온상이 된다.

포퓰리스트들은 “대의제적 민주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존 지배 엘리트와 정치제도를 부패하고 무능한 존재-“국민 배신자” 같은 공격적·선동적 구호-로 낙인 찍는다. 자신들은 그런 ‘적’들에 맞서 ‘국민(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한다.(‘적과 동지’의 이분법) 또 복잡미묘한 현안을 아주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 “신속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선언한다.” 그런 점에서 포퓰리즘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 배치되며, 옌스 휴트만 박사(동독공산당 독재청산을 위한 연방재단)에 따르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정치과정에서 아예 배제하려 드는 것은 올바르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대응이다.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병리 현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백히 다원주의의 산물인 이들을 배제하고 차단하는 것은, 자칫 “포퓰리스트들이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민주주의 아래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주장에 정당성만 실어줄 뿐”이다.

그래서 학술회의에선 ‘시민(정치) 교육’과 ‘토론(논쟁) 문화’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됐다. ‘어느 세월에?’라는 반문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좋은 시민’ 없는 ‘좋은 정치’는 무망하다. 포퓰리즘에 구성원들이 쉽게 휘둘리는 것은 “자신이 속한 민주주의 공동체에서 ‘정치적 행위’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윤정인 교수)

휴트만 박사는 1976년 당시 서독의 진보·보수가 합의해 만든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을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했다. ‘독일 정치교육의 헌법’으로 통하는 이 협약은 △강제성 금지(강압적 교화·주입식 교육 금지) △논쟁성 유지(수업에서 실제 상황 드러내기) △(학생들의)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침착하게, 흥분하지 말고, 문제를 세분화해서 살펴보는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포퓰리스트들)이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한, 우리는 반복해서 그들과 (정신적) 논쟁을 모색해야 한다. (…) 타인의 존엄이 토론의 한계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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