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김봉철 옮김/길·5만원
‘현존하는 서양 최초의 역사서’로 평가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그리스 고대사를 전공한 김봉철(59) 아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새로이 출간됐다. 2005년에 기획돼 책이 나오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왕에 문학 전공자 혹은 일반 번역자가 옮긴 책은 있었지만, 그리스사 전공자가 역자로 나서기는 처음이다.
“할리카르네소스의 헤로도토스는 그의 탐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는 인간들이 이룬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지 않도록 하고, 또 헬라스인(그리스인)들과 이방인들이 보여준 위대하고 놀라운 행적들과 특히 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인 원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태사공자서’를 연상시키는 저자 서문에는 이 책의 모든 것이 압축돼 있다.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네소스 출신인 헤로도토스는 ‘히스토리아이’(Historiai), 즉 당시 말로 ‘탐구’라는 제목-‘역사’라는 뜻은 나중에 추가됐다-을 단 이 책에서 기원전 480년께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원인과 경과, 결과와 그 이후를 글자 그대로 탐구하고 있다. 페르시아 다레이오스 왕의 사후 아들 크세륵세스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서고, 영화 <300>의 소재가 됐던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데스를 비롯한 결사대가 전멸하면서 전 그리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가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승리해 전세를 뒤집고 마침내 페르시아군이 퇴각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기록했다.
총 9권인 이 책은, 그러나 전쟁사가 아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은 3권(제7~9권)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에 앞서 고대 이집트와 리비아, 바빌론, 스키타이 등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이전 페르시아 원정지를 다룬 제1~6권은 당대의 지리적·민속학적 정보가 풍부해 사료적 가치가 높다. 헤로도토스의 일생은 이집트, 페니키아 등 지중해 일대에서 흑해 연안 스키타이에 이르는 여행과 유랑으로 점철됐는데, <역사>는 그의 인생 유전 혹은 현장 조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책은 페르시아 왕의 재위를 기준 삼아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인과 결과를 담아 단순한 연대기의 한계를 넘어섰다. 신화의 내용은 수용하면서도 허구와 ‘신격’은 덜어내고, 남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판단은 구분해 서술했다. 명백한 제약에도 사료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는 ‘~가 말하길’, ‘내가 듣기론’을 붙이고, ‘이 말이 사실이라면’ 또는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적기도 했다. 오늘날 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기원전이라는 시차를 감안하면 키케로가 헤로도토스에게 바친 ‘역사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과장이라고 할 수 없겠다.
일견 딱딱해 보이지만, 그리스어 원문을 또박또박 옮긴 직역이 역사서의 맛을 한껏 살리고 있다.
강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