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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안, 넌 누구?

등록 2016-12-08 19:43수정 2016-12-08 20:08

지리학자 신혜란 이주자연구
런던·칭다오·서울의 ‘조선족’
60만 이상 90개국 넘는 나라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신혜란 지음/이매진·1만8000원

이주 문제는 오늘날 국제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 중 하나다. 유럽과 미국,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와 태평양 섬나라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어느 한 곳도 이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화 시대의 인류는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 덕분에 빛의 속도로 연결된다. 촘촘한 ‘디아스포라’(출신지가 아닌 외국에 흩어져 사는 동질 집단들) 네트워크에 힘입어 이주도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는 “떠나고, 정착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특히 중국 동포인 ‘조선족’에 주목한다. 조선족은 “식민과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일찌감치 불안한 이동을 시작하고 삶의 역동성을 먼저 겪었던” 이들이다.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는 빠르고 넓다. 1992년 전에는 190만명 정도이던 조선족 중 60만명이 90개국이 넘는 나라로 이주했다.”

지은이는 정치지리, 젠더와 다문화, 생활공간과 인간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지리학자다. 그가 조선족의 이주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학업차 영국 런던에 머물던 시절,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이주자 사회를 알게 되면서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장소도 런던이지만, 중국의 상공업 도시 칭다오와 서울의 구로 및 대림까지 조선족 밀집지역도 함께 살핀다. 연구의 시작은 개인적 계기였지만, 심층 인터뷰와 현장 조사, 참여·관찰 등으로 쌓인 이야기들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개개인의 미시적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사회·경제적 배경 설명도 곁들였다.

서울 가리봉동 재중동포 타운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 가리봉동 재중동포 타운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조선족 이동의 특징은 그곳이 어디건 결국 한인 타운으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조선족들도 영국으로 이주했다기보다는 영국 안의 한인 사회로 이주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는 사실 현대 국제이주의 일반적 양상이다. 이주는 디아스포라를 만들고, 디아스포라는 다시 이주를 부른다!

조선족 이주자의 사연은 각자 기구하고 다양하며 고달프다. 그저 좀 더 나은 삶과 미래를 기대하며 ‘정처 없이’ 집을 떠났고, 그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많게는 3000만원의 거금을 들였다. 외국인의 입국 및 체류자격 심사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현실에서, 여권과 비자를 위조하거나 허위 정보를 기재하는 편법으로 입국하는 탓에 비용과 시간도 한없이 늘어난다. 중국에서 영국까지 4개국을 찍고 15일 만에 온 박아무개씨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스무 나라를 거쳐 오는 사람이 태반이고…, 심하면 3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렵게 이주에 성공해도, 그때부터가 진짜다. 언어 장벽, 현지인의 멸시와 이주자끼리의 불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사기 위험까지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합법’과 ‘불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살아낸다. 정체성 혼란도 심각하다. 리경옥(40대·여성·가명)씨는 자기는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어린 딸은 헷갈린다. 영국인은 분명히 아닌데, 중국인이라고 하려니까 중국말을 하나도 못하고, 한국엔 가본 적도 없다. 리씨는 딸에게 말한다. “엄마는 ‘차이니즈 코리언’인데, 넌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이야.”

한국은 그래도 사람들 외모와 언어가 같아 영국보다 정체성 혼란은 덜하다. 그러나 그밖의 환경은 영국과 마찬가지이거나 더 열악할 수도 있다. 일 독촉, 소리 지르기, 노동 착취, 임금 체불은 기본이고 “한국 사장님이 콜라를 식초라고 하면 식초라고 해야지 콜라라고 하면 안 될” 만큼 전근대적 위계에 복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조선족은 더 나은 미래에 인생을 건 이주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의 토대는 ‘지정학적 눈치’다. “조선족들 사이에는 어디는 요즘 어떻다더라는 전세계적 ‘카더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이주한 곳에서 계획한 기간이 채워질 동안 목표만큼 벌지 못한 이들도 차라리 더 있자고 결심하기 일쑤다. “미뤄진 마감이 실패한 꿈보다 낫기 때문”이다.

국가간 이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지만, 국가도 이웃도 믿을 수 없어 돈 많이 벌고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이 꼭 조선족만은 아닐 터이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방백 같은 자문으로 마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일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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