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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유네스코 문화유산 된 해녀의 숨

등록 2016-12-11 10:24수정 2017-01-06 11:12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서명숙 지음, 강길순 사진/북하우스·1만5000원

“물속에선 가슴으로 쉬주게.”

해녀는 산소통 없이 몸통만 가지고 잠수한다. 숨 안 쉬고 참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물에 들어갈 때 쉬는 숨이 있고, 물건을 잡을 때 쉬는 숨이 있고, 나올 때 쉬는 숨이 있어요. 한 번 물에 들어가면 15~16번 정도는 숨을 쉽니다. 입으로 내쉬면 물을 먹게 되니까 가슴으로만 쉬지요. 물 밖으로 나와 진짜 입으로 내쉬는 거지.”(164쪽)

71살 제주 가파도 해녀의 말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숨’을 열쇳말로 8년에 걸쳐 쓴 제주해녀 문화 보고서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2015)에 기록된 이 말을 다시금 들춰본다.

지난 11월30일 ‘제주해녀 문화’는 한국에서 19번째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해녀의 물질 기술뿐 아니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잠수굿, 조류와 바람에 관한 지식, 노동요인 해녀노래, 수면 위로 올라와 몰아쉬는 ‘아핫, 호오이~’ 같은 숨소리(숨비소리)까지 인류의 정신적 유산으로 인정했다. 가슴으로 쉬는 숨이라. 짐작하기도 어려운 호흡의 경지다. 맨몸으로 잠수해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번에 1~2분. 그때 물숨(물속에서 내쉬는 숨)은 해녀에게 죽음을 뜻한다. 이제는 숨 막히는 순간에도 희미하나마 가슴으로 쉬는 숨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빽빽한 숲(叢林·총림)에서 나무가 곧게 자란다고, 승려들이 모여 경전·계율 공부와 참선수행에 집중적으로 매진하는 사찰을 총림이라 한다. 제주해녀가 가꾼 바닷속 ‘숨의 숲’으로 이끄는 이 책은 치열하며 영적이다.

강길순 사진, 북하우스 제공.
강길순 사진, 북하우스 제공.

강길순 사진, 북하우스 제공.
강길순 사진, 북하우스 제공.

제주올레길을 개척하고 지난 10여년 동안 올레길 열풍을 이어온 지은이는 23년 경력의 기자 출신이다. 독립적이면서 가정엔 헌신적인, 잠수병에 시달리면서 또래 여성보다 건강한 육체를 지닌 해녀의 입체적인 모습을 집요하고 뜨거운 인터뷰로 담았다. 여성이 주도한 최대 항일투쟁인 ‘제주해녀 항일운동’ 후일담과 제주4·3 사건 증언을 기록한 부분은 당시 민속사로 삼을 만하다.

무엇보다 해녀는 ‘에코 페미니스트’이자 수평적 삶의 가치를 추구한 실천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질에 서투른 동료의 테왁(부력 유지를 돕고 해산물을 보관하는 도구)에 목숨 걸고 딴 전복을 보태주고, 얕은 바다에선 숨길이 짧아진 늙은 해녀만 물질할 수 있도록 자체 노후보장제도를 뒀다. 불턱(해변에 불을 피워 몸을 말리고 쉬던 곳)에서 해녀들끼리 나눈 대화는 밖으로 옮기지 않았으며, 자신들은 학력이 낮았지만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동료 자녀의 등록금을 함께 대는 자매애로 뭉쳤다. 물과 바람에 철저히 순응한 이 생태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다 살게 된다)는 호방한 정신으로 새겨졌다.

지은이는 해녀문화를 취재할 뿐 아니라 해녀학교에 입학해 직접 체험도 했다. 물질은 매일, 자꾸 하는 수밖에 없지만 “양손을 모아 인사하듯 들어가면 깊이 갈 수 있다”고 배웠다. 가슴으로 쉬는 숨이란 “깊이를 알 수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삶과 죽음은 얇은 피부를 사이에 두고 언제나 마주 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쩌면 해녀의 생 아니겠는가/ 아마도 먼바다 사투에서 살아남아/ 돌아오던 해녀의 생 같은 것 아니겠는가”(허영선의 시 ‘해녀의 생’ 일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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