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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국이 실패한 실험, 정부는 왜 따라하나

등록 2016-12-15 19:13수정 2016-12-15 21:36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험
이준구 지음/문우사·18000원

추운 겨울이다. 빈곤층 소득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한국 이야기다.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가구의 가처분 소득은 3분기 기준 지난해 대비 16%가 줄었다.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이들 가구의 한달 평균 가처분 소득은 71만7000원에 불과하다. 임시·일용직 일자리는 하반기 들어서만 12만개가 사라졌다. 같은 기간 상위 10%의 소득은 3.2% 늘었다.

이 책은 미국 이야기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쓴 네 편의 논문을 정리해 묶었다. 저자는 “승자독식 정치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미국이 역사상 최악의 분배상태를 향해 치닫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절대로 미국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국 이야기다.

한국의 양극화 실태는 미국의 양극화를 다룬 책 내용과 곳곳에서 겹친다. 최근 국내 소득불평등을 연구한 결과 1990년대 후반부터 소득집중도가 커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경제평론> 최근호에 실린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보고서를 보면 1999년엔 소득 상위 5% 집단의 소득 비중이 22.7%였으나 2014년엔 32.5%로 불어났다.

그 많은 소득증가분은 누구 몫으로 돌아갔을까. 증가분의 80% 이상을 기업 관리자(47.4%)와 금융소득자(34.9%)가 챙겼다. 이런 국내 현실과 이 책에 나오는 미국의 현실은 정확히 겹친다. 미국에서 소득 최상위 0.1%에 속하는 고액세납자의 직업 분포를 보면 기업 임원이 42.5%, 금융업이 18%로 1, 2위를 차지했다.

기업 임원의 보수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각종 금융규제가 풀린 자리에서 금융업 종사자들이 큰 부를 축적하는 일은 왜 일어났는가? 저자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간 미국 사회’를 다룬 1장에서 “미국 사회의 불평등성 심화는 사회와 정치의 보수화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한다.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정치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보수세력은 2009년까지 클린턴 대통령 집권 기간 8년을 뺀 나머지 기간 동안 내내 집권하며 줄기차게 ‘작은 정부’를 부르짖고 파격적인 감세, 정부지출 감축,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감세와 규제완화는 기업과 부유층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었고, 정부지출 감소는 빈곤층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불평등성 심화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집권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정치는 침체 상태에 빠진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주요한 명분으로 삼고 있었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경기부양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도 일조한 논리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가 활성화되면 고용이 늘어나 중·저소득층에게 광범한 이득을 가져다주리라는 신자유주의의 ‘낙수효과’ 이론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를 지난 수십년의 미국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미국의 보수 정부가 채택해 불평등을 심화시킨 정책의 예로 감세정책과 사회복지지출 감축을 든다. 재정의 재분배기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 태도, 최저임금 동결, 친부자·친기업 성격의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미국과 판박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정부는 각종 친기업적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을 미화했고 최저임금 인상에는 인색했으며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강행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려 했다. 저자는 이미 미국에서 실패로 돌아간 감세정책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새삼 재연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한다.

“분별없이 미국 따라하기를 일삼는 보수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려는 방향이 과연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다.” 경제학자인 저자가 이론적 논의를 과감히 솎아내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만듦새로 책을 낸 까닭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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