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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법적 정의? 시적 정의!

등록 2016-12-29 19:36수정 2016-12-29 20:29

법정에 선 문학
채형복 지음/한티재·1만5000원

법을 이성의 영역에만 가둘 수 있을까. 이성은 문제 해결을 추구한다. 그런데 문제 해결이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면, 이상을 좇는 예술(감성)이야말로 이성의 전제 아닌가.

채형복(53)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법)가 쓴 <법정에 선 문학>은 한국 현대 소설가와 시인 7명의 필화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숙고하게 한 뒤, 법 정의를 구현하는 도구로 문학예술을 꼽는 현대 법철학의 한 흐름으로 독자를 이끈다.

‘문학작품 반공법 기소 제1호’인 남정현 소설 <분지> 사건(1965)부터 대법원의 ‘문학작품의 음란성 판단에 대한 원칙’이 마련된 염재만 소설 <반노> 사건(1969), 사형 선고까지 나온 김지하의 시 <오적> 사건(1970), 유신에 저항했으나 보수 정치인으로 전향한 양성우의 시 <노예수첩> 사건(1977), 제주 4·3항쟁이 공론화하는 계기가 된 이산하 시 <한라산> 사건(1987), 노골적인 섹스 묘사로 ‘엄숙주의’ 논란을 일으킨 마광수 소설 <즐거운 사라> 사건(1991)과 장정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사건(1996)까지. 사건마다 ‘원인과 경과’ ‘작품 줄거리’ ‘법적 쟁점과 판단’ ‘문학으로 법 읽기, 법으로 문학 읽기’로 나눠 정리했다.

여섯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한 지은이는 국가권력이 작품에 들이댄 ‘법적 정의’를 검토한 뒤 이를 보완하는 개념으로서 ‘시적 정의’를 고민한다. 시적 정의(Poetic Justice)는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69)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가 내놓은 개념이다. 공적 합리성은 문학적 상상력의 바탕에서 추구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법률가의 필수 자질로 공감력, 상상력 등 문학성을 꼽은 것이다.

지은이가 새로 규명하다시피 한 이산하의 필화 사건은 재판기록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시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87년 11월 구속된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바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이산하의 혐의 사실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사회로 파악하고 제주 4·3폭동을 ‘민족해방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인민들의 항쟁’으로 미화하고 (…) 정부의 조치를 ‘무차별한 주민학살극’으로 묘사·비방하는 한편 (…) 북한 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한 것이다. 지은이는 이 사건 공소장, 판결 원본, 변론서를 다방면으로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고, <한라산>을 실은 잡지 <녹두서평> 재판 때 이산하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부분을 인용했다. 이산하는 1심에서 징역 1년6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산하가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법적 정의’를 보충하듯, 지은이는 <녹두서평> 항소변론과 이산하가 직접 쓴 항소이유서를 푼다. “미군정이 공산주의와 무관한 많은 양민을 희생시켰던 점은 역사적 사실로 원심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한라산>은 제주도민의 민족주의적 저항을 ‘시’ 형태로 형상화한 것으로 북한공산집단과는 관련성이 없”으니 “이 사건에서 ‘시’의 용공성 문제와 결부될 수 없다.”(항소변론 일부)

외설도 필화의 주요 소재다. 마광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헌법 제21조 4항, 제37조 2항에 따라 문학에서 표현의 자유도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 “작품이 건전한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지은이는 주관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건전’의 해석 등 문제를 지적하고, 작품은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종합적 맥락에서 평가되므로 일관성 있게 성애론을 밝혀온 마광수는 무죄라는 게 지은이가 보는 시적 정의다.

2000년대 판 필화, 문화계 블랙리스트. 양상은 달라도 국가권력이 언론·출판·창작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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