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지난 23일, 민음사 박맹호 회장의 빈소엔 출판계 큰 어른을 잃은 슬픔이 넘실거렸습니다. 고인의 후배들은 추모행사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죠. 그들의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에서 한국의 ‘압축 근대’를 온몸으로 겪은 지식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국 출판계에 큰 획을 그은 고인의 자녀들은 50년 출판명가를 2세대로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원들인 출판인 3세대들도 분주하게 손님을 맞고 있었고요. ‘송인 서적 부도 사태’로 출판서적계 전체가 흔들리는 요즘, 상가에 가득한 애도의 정서가 한국 출판의 세대 교체·변화·혼돈과 맞닿은 듯해 복잡한 심정이었죠.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송인 사태’로 충격부터 받은 출판인들은 정부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블랙리스트’로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고 특정 저자와 출판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정부도 분명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송인 서적과 더 위험한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은 출판사들의 위기감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전체의 80%에 육박하는 1인출판사를 비롯한 작은 출판사들을 지키려는 시민 운동 ‘십시일반 지름신 프로젝트’(▶‘작은 출판사를 지켜라’ 십시일반 지름신 뜬다)도 진행중이니 동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설상가상 이런 위기에 ‘어른’으로 나서서 연대를 요청할 분들도 이제 얼마 계시지 않으니 설을 맞고도 느느니 한숨이군요.
신간 <시간의 힘>(임석재·홍문각) <노년은 아름다워>(김영옥·서해문집)는 모두 ‘어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노년문화를 연구해온 여성주의 문화이론가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대표와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는 모두 나이 든 사람의 구실을 중요하게 밝힙니다. 모쪼록 ‘어른’들이 쌓아올린 시간의 경험, 높은 정신의 품격이 유산으로 후대에 성공적으로 계승되는 새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