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류은숙 지음/낮은산·1만5000원 벽은 보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매장이 별건가. 묻는다는 건 벽을 다만 평평하게 치는 일. 단절은 자기 매몰의 수단일 수 있다. 고립은 독립과도 다르다. 인권론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로 기능해왔다. 매장당할 뻔한 공동체의 구원이었다. 2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지은이의 여섯 번째 책 <미처 하지 못한 말>은 1월부터 12월까지 ‘인권 달력’ 형식으로 꾸며졌다. 달마다 인권사에서 주요하게 기억할 만한 국내외 사건, 선언, 개념, 보고서, 연설 등 두 가지씩을 꼽아뒀다. 2월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달. 3년 전 일이다. 이때 언론에서 많이 언급된 ‘복지 사각지대’라는 표현을 지은이는 민망해한다. “우산이 너무 작은데, 그 안에 들어오지 않아 비 맞은 거라고 말하는 꼴”. 우산은 왜 작은가. 한국의 복지 정책은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뜻하는 생존권 성취에 머무른다. 서구에선 생존권보다 확대된 개념인 ‘사회권’까지 논의된다. 사회권은 목숨을 부지할 뿐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고 적절한 교육을 받아 존엄해지는 삶을 목표한다. 복지의 목적이 사회권 보장일 때 ‘인권 우산’이 커지고, 따라서 사회권보다 좁은 개념인 생존권도 더 원활히 구현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사회권은 사활적 필요에 대한 권리다.”(사이러스 밴스) 인권 문제는 어렵고 진지하기만 하며 고리타분하다는 일부의 인식을 쩍 쪼개준다. 전혀 ‘골이 따분’하지 않은 287쪽짜리 책은 가벼워 들고 다니기도 편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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