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설 때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오래전 발인 날, 학교 후배들이 관을 메었습니다. 칼바람이 몰아쳤고 슬펐지만 울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한테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죠. 하관 때 어린 조카가 관 위에다 엽서 한장을 살짝 올려두었던 장면 말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저 한 세대가 끝났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소설가 김훈이 아버지와 자신의 시대를 그린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내놓았습니다. 그가 쓴 <라면을 끓이며>(2015)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관이 내려갈 때 나는 내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기로 작심했다. 내 아버지가 조국이라는 운명을 저주했듯이 나는 내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했다.”
저는 딸이라 아버지와 같은 삶을 상상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4·19세대로서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얼마나 노력하여 조국 발전의 주축이 되었는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나는 거름이 되겠다. 너희는 벼랑에서 떨어져라. 살아남는 놈만 살리겠다” 하신 말씀도 떠오르네요.
가신 분들의 생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그분들의 경험을 제 삶에서 재탕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민란의 시대> 인터뷰에서 밝혔듯, 우리 근대 역사에서 민중의 혁명은 완수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거리로 나섰던 4·19도 마찬가지였죠. 작년 말부터 나라의 변화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온 시민의 활동이 ‘혁명’인지는 몰라도, 그 변화의 성원과 바람이 아버지 시대처럼 ‘미완’으로 끝나는 일은 사양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시대를 끝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시대는 자식을 벼랑으로 내몹니다. 아버지가 살리지 않더라도 괜찮을 겁니다. 완수하지 못한 것을 완수한다면 말이죠.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