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벌레입니다. 먼지다듬이인지 좀벌레인지 한두마리가 아닙니다. 책갈피 사이에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녀석들을 팍 때려 잡으려다가 <벌레의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뭐가 다르겠나, 하는 생각에 그냥 놔둡니다. 위생이 발달한 곳에 알레르기가 많다는 ‘위생의 역설’도 있지 않습니까. 너무 깨끗한 것도 좋지 않다죠.
벌레와 공생하는 <인간 이후>에는 어떤 생물이 지구를 지배할까. 이런 공상, 사치입니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문제나 성격 갈등 같은 것으로 오래 다툰 부부들은 ‘졸혼’을 꿈꾼다지만 이 또한 배우자끼리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냥 혼인한 채 살지 졸혼이 웬 말이냐고 신승근 라이프에디터가 말씀하시더군요.
한평생 살면서 디드로처럼 <백과전서>를 펴낼 것도 아니고, 하이데거나 마르크스처럼 엄청난 생각을 해낼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니 이런 생도 괜찮다고 위로해보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처지에 따라 해석이 다르기에 <하나일 수 없는 역사>라지만, 세상은 왜 이리 강자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겁니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고,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 하니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싶습니다. 그래도 힘내라고 한다면,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고 대꾸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글은 강병융 소설집에 실린 단편 ‘우라까이’(‘남의 기사를 베끼고 살짝 비틀어서 제 기사처럼 쓰는 관행’)에서 형식을 가져와 이번 ‘책과 생각’에 등장한 책 제목만으로 꾸며본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우라까이 강병융’ 검색하시면 귀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동화 구연 같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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