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서명숙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이 책은 이러하다. “제 대학 선배 천영초(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71학번)씨가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실존인물이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그곳에서 큰 사고를 당해 두 눈의 시력을 잃고 뇌의 6, 70퍼센트가 손상되는 바람에, 이제는 단순한 말과 행동밖에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천영초는 이러했다. “영초 언니는 제게 담배를 처음 소개해준 ‘나쁜 언니’였고, 저를 이 사회의 모순에 눈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지식인의 모델’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예수가 그러했듯, 조영래에게 전태일이 그러했듯, 지은이 서명숙(60·제주올레 이사장)에게 천영초가 그러했다. 서명숙과 천영초, 그리고 수많은 ‘운동권 여학생’들은 유신독재 후반 ‘막걸리 긴조(긴급조치) 시대’를 어떻게 건넜던가. 그들은 이러했다. 두려웠고 아팠고 흐느꼈고 흔들렸고 허물어졌고 슬펐고 미안했고 분노했고 수줍었고 애처로웠고 울었고 그리워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지은이에게 ‘영초 언니’는 뭇사람 누구나 한둘은 가슴에 ‘늘 애틋한 풀각시’처럼 품고 있을 사람이다. 이 책은 그 기억의 복원이다.
동맥처럼 펄떡이는 세상, 지은이는 모세혈관 같은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참된 글은 밥과 같아서, 결코 요약되지 않으며, 오직 손에 잡힐 듯한 구체성으로, 온전한 밥 한 공기처럼 전체 그 자체로, 사람 마음의 모세혈관에 스민다. <영초언니>가 그러하다. 헌사와 소망을 담은 ‘글밥’ 한 공기, 그대는 누구에게 건네려는가.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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