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복 원작·이원화 소설/조인출판사·1만2000원 소설은 5월16일에서 시작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이틀 전 연꽃이 만개한 저수지에 한 남성의 주검이 떠오른다. 고문의 흔적이 뚜렷했고, 누군가 타살의 증거를 지우려고 신발을 바꿔치기한 것도 티가 났다. 24살 ‘운동권 리더’ 철수의 죽음은 자살로 발표됐다. 의문사를 밝히려던 22살 연인 명희는 계엄군 대위가 쏜 총을 머리에 맞고 해리성기억상실증으로 살아 있되 영원히 1980년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1980년 5월 광주를 주제로 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개봉을 앞두고 나온 소설. 박기복 감독의 원작 시나리오를 이원화 작가가 재가공했다. 책은 ‘짐승의 시간’을 살아낸 당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시대정신, 고뇌를 중심으로 37년이 지난 2017년 오늘을 그리고 있다. 유명한 개그우먼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지만 자신의 ‘뿌리’를 외면하고 친부모 존재를 부정했던 희수가 결혼을 앞두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철수와 아직도 고통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명희를 이해하는 과정을 오롯이 담았다. 촬영을 마친 영화의 스틸컷들도 함께 실었다. 철수에서 명희, 희수로 전해지는 ‘두꺼비 펜던트’는 의미심장하다. 새끼를 품고 뱀의 뱃속에 들어가는 두꺼비는, 언젠가 뱀의 영양분을 먹고 그 배를 찢고 나올 새끼들을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한다. “다들, 다들 나보다 힘들었을 텐데 엄살 한번 피우지 않고 어떻게 살았어?”라는 희수의 탄식은 자신을 불살라 민주주의를 꽃피우려 했던 젊은 철수에게 전하는 말 같이 들린다. 희수의 결혼식이 금남로의 영혼들과 마침내 맞닿는 순간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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