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출판 편집자들의 대화 한토막. “이번 책 좋더라. 반응 어때? 많이 나갔지?” “괜찮은 편. 7000부. 거긴 얼마나?” “우린 20만부.” “당신이 밥 사.”
4년 만에 장편으로 돌아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전2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가 서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중계하듯 대형서점에서 시간대별로 판매 동향이 나오는 건 참 보기 드문 일이었는데요. 12일 낮 12시 기준 교보문고의 성/연령별 구매비율을 보니 가장 구매율이 높은 구간은 30대 여성(26.2%)이었습니다. 30대 남성도 19.3%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출판계 뒷이야기를 종합하면, 국내 ‘하루키 돌풍’에 일조하는 남성 독자 상당수가 군복무 때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다고 합니다.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국방부가 비치하는 진중문고 서가에서 찾아 읽은 분들이 많다는 것인데요. 선정적인 남성잡지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책의 ‘19금’ 장면이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음울하고 다소 허무한 그의 책이 가진 정서가 ‘전력’을 약화시킬 법도 한데, 뜻밖의 이유로 진중문고가 오늘날 하루키 인기를 높이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는 믿지 못할 풀이인 것이죠.
<기사단장 죽이기>는 예약판매 기간에만 15만 세트(30만권)를 인쇄했다고 합니다. 출판·서점계는 이 책이 올여름 책 시장의 ‘진공청소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이 책을 사러 온 사람이 다른 책까지 구매하는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루키를 어떻게 만났든, 덥고 습한 여름날 모쪼록 시원한 책방에 오래 머물며 다른 도서도 함께 살펴보시길! 내로라하는 국내외 에세이스트, 소설가 들의 책도 하반기 책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으니까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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