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세벽세시 책읽기
광대한 여행
로렌 아이슬리 지음, 김현구 옮김/강(2005) 사람은 고독한 것이 맞지만 고독하지만은 않게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이야기를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가 그렇다. 한 사내가 얼어붙은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 흰 눈 사이로 독특한 초록빛 물체가 눈길을 끌었다. 딱딱한 얼음에 갇혀 수염을 축 늘어뜨린 커다란 얼굴. 대체 뭐지? 그 얼굴의 주인은 메기였다. 불쌍한 메기는 얼어붙은 채 봄의 해동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사내는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했지만 어쩐지 메기의 얼굴이 그를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내는 메기를 꺼내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먹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사내는 메기를 둘러싼 얼음을 토막 내어 차 안에 있는 상자에 메기와 얼음을 통째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녹아가는 물과 얼음이 든 상자를 지하실에 처박았다. 그런데 몇시간 뒤 지하실에 내려가니 놀랍게도 용기 안에서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음은 녹아 있고 메기는 힘겹게 아가미를 움직이고 있었다. 은빛 물방울들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메기는 소들도 산 채로 얼어붙게 만든다는 초원의 눈보라를 이기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때 메기가 사내에게 말했다. “수조.” 사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수조, 가져올게.” 메기는 겨울 내내 남자와 함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메기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그 밤에 메기는 로키산맥에서 발원해서 강의 모래 속 은신처를 흐르던 물을 몸 깊숙한 곳에서 느꼈던 것일까? 메기는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주위에 아무도 없던 날, 메기는 수조 밖으로 힘껏 도약을 했다.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도박을 한 메기는 죽었다. 뛰어내린 곳이 수로였다면 메기는 살았겠지만 방바닥이었기 때문에 메기는 죽었다. 그렇지만 메기의 선택은 옳았다. 메기의 죽음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런데도 이 글을 읽을 때 기쁨을 느꼈다. 어느 비 내리는 밤에 젖은 채 내 방으로 날아든 나방을 지켜보다가 그 기쁨의 원인을 알았다. 바로 메기의 말 “수조” 그리고 사내의 말 “수조, 가져올게” 때문이었다. 그 대화만 떠올리면 웃게 된다. 나도 나방이랑 이야기했다. “수건.” “네, 닦을 게 필요하세요? 수건 가져올게요.” 그 대화 속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의 관점을 취한다. 상황을 보는 새로운 시선,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이란 책에 등장하는데 그 책은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책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수없이 많은 시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개굴개굴 울고 있는 개구리 앞에서 꿈쩍도 않고 서 있는 인간의 모습도 등장한다. “내가 움직이면 개구리가 놀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시야의 확장이다. 그 자신을 다른 생물들에게 투사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인류의 고독하고 장대한 힘이며 확장의 궁극적인 전형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중요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확장이다. “당신, 뭐가 필요한가요?” 그렇게 주고받는 주의깊은 시선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정하고 서로를 염려하던지.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로렌 아이슬리 지음, 김현구 옮김/강(2005) 사람은 고독한 것이 맞지만 고독하지만은 않게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이야기를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가 그렇다. 한 사내가 얼어붙은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때 흰 눈 사이로 독특한 초록빛 물체가 눈길을 끌었다. 딱딱한 얼음에 갇혀 수염을 축 늘어뜨린 커다란 얼굴. 대체 뭐지? 그 얼굴의 주인은 메기였다. 불쌍한 메기는 얼어붙은 채 봄의 해동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사내는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했지만 어쩐지 메기의 얼굴이 그를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내는 메기를 꺼내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먹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사내는 메기를 둘러싼 얼음을 토막 내어 차 안에 있는 상자에 메기와 얼음을 통째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녹아가는 물과 얼음이 든 상자를 지하실에 처박았다. 그런데 몇시간 뒤 지하실에 내려가니 놀랍게도 용기 안에서 퍼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얼음은 녹아 있고 메기는 힘겹게 아가미를 움직이고 있었다. 은빛 물방울들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메기는 소들도 산 채로 얼어붙게 만든다는 초원의 눈보라를 이기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때 메기가 사내에게 말했다. “수조.” 사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수조, 가져올게.” 메기는 겨울 내내 남자와 함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메기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그 밤에 메기는 로키산맥에서 발원해서 강의 모래 속 은신처를 흐르던 물을 몸 깊숙한 곳에서 느꼈던 것일까? 메기는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주위에 아무도 없던 날, 메기는 수조 밖으로 힘껏 도약을 했다.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도박을 한 메기는 죽었다. 뛰어내린 곳이 수로였다면 메기는 살았겠지만 방바닥이었기 때문에 메기는 죽었다. 그렇지만 메기의 선택은 옳았다. 메기의 죽음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런데도 이 글을 읽을 때 기쁨을 느꼈다. 어느 비 내리는 밤에 젖은 채 내 방으로 날아든 나방을 지켜보다가 그 기쁨의 원인을 알았다. 바로 메기의 말 “수조” 그리고 사내의 말 “수조, 가져올게” 때문이었다. 그 대화만 떠올리면 웃게 된다. 나도 나방이랑 이야기했다. “수건.” “네, 닦을 게 필요하세요? 수건 가져올게요.” 그 대화 속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의 관점을 취한다. 상황을 보는 새로운 시선, 다른 시선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이란 책에 등장하는데 그 책은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책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수없이 많은 시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개굴개굴 울고 있는 개구리 앞에서 꿈쩍도 않고 서 있는 인간의 모습도 등장한다. “내가 움직이면 개구리가 놀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시야의 확장이다. 그 자신을 다른 생물들에게 투사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인류의 고독하고 장대한 힘이며 확장의 궁극적인 전형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중요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확장이다. “당신, 뭐가 필요한가요?” 그렇게 주고받는 주의깊은 시선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정하고 서로를 염려하던지.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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