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백민석 글·사진/ 작가정신·1만4000원 “당신은 오늘 센트로 아바나의 반대편, 아바나의 중심 카피톨리오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당신은 어제도 아바나를 걸었고 그제도 아바나를 걸었고 오늘도 아바나를 걷고 있다.”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햇볕이 이글거리는 아바나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며 순진하게 웃는 얼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숨긴 것 같은 누군가의 뒷모습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마치 나의 여행길이었던 듯싶다. 쿠바로 떠난 소설가 백민석이 여행 에세이를 펴냈다. 쿠바 여행을 마친 뒤, 시간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사진을 먼저 배열하고 어울리는 글을 덧붙였다. 백민석을 2000년대 초반 세기말적 중후함이 넘실대던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면 이번엔 조금 다르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감정의 소모보다는 생산적인 느낌이 들고, 우울하기보다는 충만한 감정이 샘솟는다. “택시 한 대 지날 좁은 골목에도 격렬한 볕이 가득 차 야수처럼 꿈틀거린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땐 마음도 함께 꿈틀거린다. 목덜미며 어깨에 눈부신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밤이 되면 공연이 벌어지는 작은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발디딜 틈 없이 춤을 추는 축제 같은 도시로. 백민석의 이런 고백을 읽으면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순서 없이 뒤섞인 오래 전 여행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보통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쓰고 나면 소모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바나의 시민들>을 쓰고 나서는 오히려 충만한 감정을 가졌다.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 경험한 신기한 느낌이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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