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전집 전34권의 텍스트 서지 비평을 행한 문학평론가 이윤옥. “전문 연구자들도 들인 공에 비해 소출이 크지 않다며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 비평을 꺼리는데, 이청준 소설 전체를 꿰뚫고 있는 이윤옥 선생이 이청준 소설의 텍스트 변화를 추적하고 상호텍스트성을 밝힌 점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라고 동료 문학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평가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달 모두 34권으로 완간된 이청준전집에는 권마다 새로 쓴 해설과 함께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라는 꼭지가 곁들여졌다. 수록 작품의 초고와 최초 발표 지면, 단행본 수록 판본별 비교, 작가의 다른 작품과 관련성 등을 꼼꼼하게 밝힌 글이다. ‘이청준 박사’라 이를 법한 불문학자 겸 문학평론가 이윤옥이 이 방대한 작업을 혼자서 감당했다.
“선생님의 단편 ‘병신과 머저리’는 거의 서른번쯤 읽었을 거예요. 대표작인 장편 <당신들의 천국>도 초고를 포함해 열댓번은 읽었을 거고요.”
이청준(1939~2008) 타계 반년쯤 전인 2008년 2월 전집 작업이 시작되면서 집중적인 독서가 이루어졌지만, 전집 작업 이전에도 그는 ‘이청준 전작주의자’였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의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읽고 ‘이런 작가가 있다니’라며 놀란 뒤 선생님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었죠. 몇십년에 걸쳐, 안 읽은 소설이 없을 정도로 다 읽었어요.”
그렇게 머릿속에 이청준의 모든 소설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작가에게 직접 건네받은 초고와 메모, 그리고 최초 발표본과 단행본별로 바뀐 텍스트 등을 비교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가령 등단작인 단편 ‘퇴원’과 관련해서는 <사상계> 1965년 12월호 발표본에는 초고에 없던 광에 대한 삽화가 추가되었으며 초고에서 ‘걸’이었던 의사 이름이 ‘준’으로 바뀌었다는 등의 실증적 정보를 밝혔다. <사상계> 발표본과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일지사, 1971) 수록본 사이에는 “율동”이 “율동감”으로, “일어나 앉았다”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로 바뀌는 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밖에도 ‘나’의 어린 시절 삽화에 등장하는 전짓불이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과 ‘소문의 벽’ ‘잔인한 도시’ ‘전짓불 앞의 방백’ 등에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상호 텍스트적 분석도 곁들여진다.
“<당신들의 천국>은 초고에서 최초 발표본을 거쳐 완성본까지, 같은 작품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어요. 잡지 연재본과 단행본은 구조 자체가 다를 정도죠. 그렇게 위대한 작품도 초기에는 얼마나 허술하게 출발했는지, 그리고 역설적으로 선생님께서 주제에 못지 않게 문학적 완성도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편 17편에 중단편 155편, 그리고 희곡 1편에 이르는 이청준의 모든 작품에 대해 이처럼 꼼꼼하고도 정확한 서지 비평을 수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께 넘겨받은 초고와 메모 같은 자료들이 일차적인 도움이 되었지만, 최초 발표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히 발품을 팔아야 했어요.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서울대, 이화여대 등 대학 도서관들, 신문사 아카이브, 지방 행정기관 등을 숱하게 찾아다녔죠. 문학지가 아니라 농민 대상 잡지나 웹진에 실린 것도 있어서 찾는 데 더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한 사실도 있다. 유명한 단편 ‘눈길’은 <문예중앙> 창간호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잡지 창간호인 1978년 봄호에는 정작 이 작품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도서관에서 확인한바, 이 잡지가 창간호를 내기 전에 일종의 준비호로 1977년 겨울호를 냈으며 거기에 ‘눈길’이 실려 있었다. “1978년 창간호가 아니라 ‘1977년 겨울호에 실렸다’는 그 한 줄을 쓰느라 반년을 찾아 헤맸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이청준 전집을 비평 작업한 이윤옥 문학평론가.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가 이청준과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은 스승인 고 김치수 교수를 통해서였다. “왠지 선생이 내 글을 좋아하셨다”고 그는 말했다. 2003년에 낸 장편 <신화를 삼킨 섬>은 집필 기간만 5년에 이르렀는데, 이청준은 한 장을 쓸 때마다 초고를 그에게 보내 오고는 했다. 작품이 출간된 뒤 그에 관한 평론을 써서 작가에게 보여주었더니 작가가 그 글을 월간 <현대문학>에 보내는 바람에 얼떨결에 등단했다. 2005년에 낸 첫 평론집 <비상학, 부활하는 새, 다시 태어나는 말>은 ‘이청준 소설 읽기’라는 부제처럼 온전히 이청준 소설을 주제로 삼은 책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쌓인 신뢰 탓일 게다. 평론집이 나온 뒤 이청준은 그에게 자신의 평전을 써 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거절했고 작가도 수긍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다시 부탁했을 때는 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평전 작업에 착수한 그에게 이청준은 이런 말을 했다. ‘작가는 모든 소설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평전 작가는 그런 작가를 이겨야 한다.’ “이런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이윤옥은 말했다. 자료 조사와 주변 인물 인터뷰 등을 거쳐 원고지 2천장 분량의 평전 초고를 완성한 상태지만 출간은 미뤄 두고 있다. “살아 계신 분들이 평전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분들께 민감한 내용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평론집과 평전 이외에 이청준과 관련해 추가 작업을 할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다른 글이 있어요. 자화상에 대한 짧은 책을 쓰고 싶고, 옛이야기를 내 식으로 쓴 글에도 흥미가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본래 잡식 스타일로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전집 작업을 하는 동안 독서량이 많이 줄었어요. 이제부터는 읽고 싶은 책 읽고 쓰고 싶은 글 쓰면서 유유자적하고 싶어요. 아, 누군가 ‘이청준 전작 읽기’ 모임을 한다면 거기에는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공적인 일이니까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