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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 소설가에게 소설이 된 시인, 신경림

등록 2017-08-24 18:58수정 2017-08-24 20:03

시인 신경림
이경자 지음/사람이야기·1만2000원

좋은 예술을 만나면 안에서 흘러나온다. 눈물, 경탄, 안도, 후회, 기쁨, 침울, 편안함, 불편함… 뭐라도. 내 안에서 나온 감동 가운데 특별히 귀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발견한다면 행운이다. 이때 예술은 영원한 스승 역할을 한다. 최고의 것을 안으로부터 끌어내는 존재가 스승이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신경림 ‘길’ 일부)을 가르치는 이.

1973년 등단한 이후 여성주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꿰뚫는 작품을 써왔으며 한무숙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고정희상, 후배 작가들이 주는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받은 소설가 이경자(69)에게 시인 신경림(82·사진)이 그런 존재인 듯싶다. <시인 신경림>은 한국 문단의 작은 거인 신경림의 일대기와 문학을 이경자가 풀어쓴 책. 자신만의 작품세계가 원숙하게 우거진 중견 작가가 또다른 작가를 글감으로 한 권의 책을 내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지은이는 ‘작가의 말’에서 “신경림 선생님에 대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마치 어떤 소재가 가슴에 들어와 덜컥 살림을 차리는 것과 흡사한 경우다. 나는 이런 걸 불씨라고 믿는데 그 불씨가 아무리 기다려도 꺼지지 않을 땐 ‘소설로 써야’ 놓여날 수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선생님은 나의 ‘소설’이 되었다”고 썼다.

한 소설가에게 ‘소설’이 된 시인 신경림, 그의 출생과 성장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기까지의 풍경이 ‘시와 함께’ 담겼다. 전체 168쪽 구석구석에 신경림을 대표하는 시, 많은 독자가 기억할 만한 시, 근작들이 고루 배치돼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도움말이 충분한 시집처럼 읽히기도 한다.

2008년 2월 20일 오후 열번째 시집 <낙타>를 낸 신경림 시인이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2008년 2월 20일 오후 열번째 시집 <낙타>를 낸 신경림 시인이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구로 유명한 ‘가난한 사랑 노래’는 시인이 운동권 출신 현장노동자와 술집 딸의 결혼 주례를 맡고 쓴 축복의 시다. 책을 읽어보면 이 시의 모태가 ‘너희 사랑’이라는 시이고, 시인이 ‘노동자’와 ‘술집 딸’의 혼사를 챙기기까지 맥락을 알 수 있다. 이야기시, 장시의 형식과 입에 붙듯 착착 감기는 리듬은 민요의 영향을 받았다. 신경림이 민요를 파고들어 캐낸 민중의 정수가 시에 녹아드는 세월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큰 재미다.

신경림의 시는 쉽게 읽히는데 잘 잊히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의 시는 위로 타오르는 열기보다 옆으로 맴도는, 그래서 ‘전해지는’ 온기에 가깝다. 몸과 마음을 녹이는 건 온기이지 태워 없애는 열기가 아니다. 게다가 낮게 가라앉으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신경림 시의 ‘차분한 온기’가 <시인 신경림>에도 서려 있다.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떠도는 자의 노래’) 허랑하게 사는 동안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낙타’ 일부) 부르는 신경림 시의 가장 친절한 소개서.

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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