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반비(2017) 지난 며칠간 달은 찬란하고 하늘은 드높고 바람은 살며시 불어와서 인생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내 친구가 사는 섬동네에 어느날 떠돌이 엄마 개가 여섯 마리 새끼 강아지와 나타났다. 개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축 늘어진 젖가슴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뭔가 구한 날은 새끼부터 먼저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새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된 새끼 한 마리가 짧은 다리로 도로를 건너려고 했다. ‘저 파랗게 출렁이는 거지? 신기한걸.’ 강아지는 바다를 알아볼 참이었던 것 같다. 엄마 개는 강아지를 준엄하게 야단치는 표정을 짓고서 목덜미를 입으로 물어 들었다. 그때 차량의 행렬은 새끼를 입에 문 엄마 개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가기를 기다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에게 전화로 듣고 있었다. 나와 통화를 하던 친구는 나는 팽개치고 강아지를 무사히 내려놓은 엄마 개에게 폭풍같은 칭찬을 쏟아 부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착하니? 넌 정말 착한개야! 쪽쪽쪽쪽쪽” 수화기 너머로 그 소리를 듣는 내 마음 속에 안도감과 사랑이 솟구쳤다. 동물부터 인간, 바다까지 온 세상이 사랑할 것으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결코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사랑으로 무엇을 할까? 이 사랑은 무엇을 위해 사용할까?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걸었던, 몸으로 더 넓은 세상과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끌었던 사람은 시인 워즈워스였다. 그의 시집 서곡 서문에 나오는 한구절 때문이었다. ‘내가 택할 길잡이가/ 그저 하늘을 떠도는 구름뿐이라고 한들/ 나는 길을 잃을 수가 없소’ 그동안 ‘인생 중반에 이르러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을 헤매었네’로 시작하는 단테의 신곡부터 길을 잃는 글이라면 충분히 읽어왔고, 매일 새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장애물과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맥빠지고 길을 잃은 듯한 느낌 역시 실컷 맛봐봤다. 그러나 이제는 길을 잃지 않는 이야기, 갈 길을 잘 아는 이야기, 아주 먼 훗날에도 쓸모있게 이어져 멀리가는 길을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다. 워즈워스는 평생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으면서 시를 썼고 시골길을 사랑하여 ‘시골신’으로 불렸지만 전반적인 자연의 아름다움, 특별히 아름다운 장소와 감상 취향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향내나는 꽃으로 가득한 들판, 뛰노는 어린양, 감당할 수 있는 몫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머리 위를 비추는 눈부신 달, 함께 밤길을 걸었던 친구와의 우정을 떠올리면서 고양되고 확장된 자신의 생각과 사랑으로 가득해진 마음을, 한순간 벌어진 좋았던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최상급의 힘이자 능력으로 삼는 시를 썼다. 길을 잃지 않는 데 중요한 것은 연결이었다. 사랑을 일상과 영혼 둘 다에 연결하는 것. 가장 좋아해서 아름답다고 느낀 일을 앞으로 될 나와 연결하는 것. 그 때문에 남모르게 바빠져 길을 걷는 것. 문학과지성사판 워즈워스의 서곡을 펼쳐보았더니 결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푸른 정자에서 쉬시게, 그리고 홀로있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게.’ 가을, 그렇게 하고 싶은 날이다. 아직 모르는 길, 그러나 방향은 맞는 길 하나가 이어질것이다.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반비(2017) 지난 며칠간 달은 찬란하고 하늘은 드높고 바람은 살며시 불어와서 인생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내 친구가 사는 섬동네에 어느날 떠돌이 엄마 개가 여섯 마리 새끼 강아지와 나타났다. 개는 아기를 낳은 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축 늘어진 젖가슴을 하고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뭔가 구한 날은 새끼부터 먼저 먹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새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된 새끼 한 마리가 짧은 다리로 도로를 건너려고 했다. ‘저 파랗게 출렁이는 거지? 신기한걸.’ 강아지는 바다를 알아볼 참이었던 것 같다. 엄마 개는 강아지를 준엄하게 야단치는 표정을 짓고서 목덜미를 입으로 물어 들었다. 그때 차량의 행렬은 새끼를 입에 문 엄마 개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가기를 기다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에게 전화로 듣고 있었다. 나와 통화를 하던 친구는 나는 팽개치고 강아지를 무사히 내려놓은 엄마 개에게 폭풍같은 칭찬을 쏟아 부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착하니? 넌 정말 착한개야! 쪽쪽쪽쪽쪽” 수화기 너머로 그 소리를 듣는 내 마음 속에 안도감과 사랑이 솟구쳤다. 동물부터 인간, 바다까지 온 세상이 사랑할 것으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결코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사랑으로 무엇을 할까? 이 사랑은 무엇을 위해 사용할까?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걸었던, 몸으로 더 넓은 세상과 만났던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끌었던 사람은 시인 워즈워스였다. 그의 시집 서곡 서문에 나오는 한구절 때문이었다. ‘내가 택할 길잡이가/ 그저 하늘을 떠도는 구름뿐이라고 한들/ 나는 길을 잃을 수가 없소’ 그동안 ‘인생 중반에 이르러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을 헤매었네’로 시작하는 단테의 신곡부터 길을 잃는 글이라면 충분히 읽어왔고, 매일 새로워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장애물과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맥빠지고 길을 잃은 듯한 느낌 역시 실컷 맛봐봤다. 그러나 이제는 길을 잃지 않는 이야기, 갈 길을 잘 아는 이야기, 아주 먼 훗날에도 쓸모있게 이어져 멀리가는 길을 만드는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다. 워즈워스는 평생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으면서 시를 썼고 시골길을 사랑하여 ‘시골신’으로 불렸지만 전반적인 자연의 아름다움, 특별히 아름다운 장소와 감상 취향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향내나는 꽃으로 가득한 들판, 뛰노는 어린양, 감당할 수 있는 몫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머리 위를 비추는 눈부신 달, 함께 밤길을 걸었던 친구와의 우정을 떠올리면서 고양되고 확장된 자신의 생각과 사랑으로 가득해진 마음을, 한순간 벌어진 좋았던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친 최상급의 힘이자 능력으로 삼는 시를 썼다. 길을 잃지 않는 데 중요한 것은 연결이었다. 사랑을 일상과 영혼 둘 다에 연결하는 것. 가장 좋아해서 아름답다고 느낀 일을 앞으로 될 나와 연결하는 것. 그 때문에 남모르게 바빠져 길을 걷는 것. 문학과지성사판 워즈워스의 서곡을 펼쳐보았더니 결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푸른 정자에서 쉬시게, 그리고 홀로있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게.’ 가을, 그렇게 하고 싶은 날이다. 아직 모르는 길, 그러나 방향은 맞는 길 하나가 이어질것이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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