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문학동네·1만8000원 한 손으로 잔을 잡고 있으면서 다른 손에 낀 장갑은 벗지 않는 여자. 혼자 그러고 있는 여자의 손을 오래 쳐다본 적이 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 ‘자동판매기 식당’(1927)에서. 양손 가득 온기가 필요해 나머지 한 쪽의 장갑을 벗지 않는 여자를 보면, 그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공기가 보였다. 냉기라면 잠시라도 참기 싫을 만큼 마음이 서늘할 때면 이 그림이 생각나곤 했다. 생각이 난다는 건 눈앞에 있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상태다. 그렇게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무엇엔 눈으로는 다 감지되지 않는 영감이 서려 있다. 걸작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빛 혹은 그림자>는 호퍼의 그림 17점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단편소설 모음집. 공동저자 17명은 ‘장르문학 어벤저스’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스티븐 킹과 조이스 캐럴 오츠, 호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지는 게일 레빈을 포함해 마이클 코널리, 리 차일드, 크리스 넬스콧, 로런스 블록 등 영미권의 쟁쟁한 스릴러·미스터리 작가들이 오직 호퍼의 이름으로 모였다. 이 책의 기획자이기도 한 로런스 블록이 호퍼의 ‘자동판매기 식당’에 이야기를 입힌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은 올해 에드거상 최고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에드워드 호퍼, ‘자동판매기 식당’, 1927년. ⓒ Des Moines Art Center/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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