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지음/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윤고은(사진)의 세번째 장편 <해적판을 타고>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현실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앞선 두 장편에 이어진다. 2008년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무중력증후군>이 달의 증식이라는 환상적 설정으로 현실의 부박함을 풍자했고, 두번째 장편 <밤의 여행자들>(2013)이 재난과 종말에 관한 전복적 사유를 보여주었다면, 이 소설은 집 마당에 묻힌 유해 폐기물을 통해 환경문제를 부각시킨다. 열두살 소녀 채유나가 엄마 아빠와 두 동생과 같이 사는 집 마당에 어느 날 정체 모를 자루가 묻힌다. 아빠가 근무하는 ‘센터’에서 임시로 맡긴 이 자루에는 중금속 비소에 오염된 토끼 주검들이 들어 있다. 동네에는 불길한 소문이 돌고, 곧 자루를 가져간다던 센터는 감감무소식. 유나와 동생들은 채송화와 지렁이로 풍요롭던 마당을 되찾고자 하지만, 어른들의 완고한 침묵과 고집을 깨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어른이 되어 하는 일이란 게 기껏 다른 사람 집에 잿빛 자루를 묻거나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게 유나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가운데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이제 열다섯살이 된 유나와 가족은 센터가 제공하는 아파트로 집을 옮긴다. 유나에게는 남자친구 ‘뒤뒤’가 생기고, 오염 토끼 자루 사건은 뒤늦게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잘못을 저지른 어른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거나 한다. 유나네는 빼앗긴 마당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든 환멸과 상실감을 맛보아야 한다.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모든 건 시작되었고, 시작을 만든 우두머리들은 뒤에, 뒤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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