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차가운 벽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2013)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트루먼 커포티가 1956년에 쓴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는 글이다. 일곱살 버디는 예순살이 넘은 사촌과 살고 있다. 버디의 말에 따르면 사촌은 화장을 해본 적도, 욕을 해본 적도, 다른 사람이 나쁘게 되기를 바란 적도, 고의로 거짓말을 한 적도, 굶주린 개를 못 본 척한 적도 없다. 11월 하순의 어느 아침 백발의 사촌은 부엌 창가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나, 과일 케이크를 만들기에 좋은 날씨네. 케이크를 서른 개나 구워야 해.” 크리스마스 시즌은 매년 똑같이 11월의 화창한 아침 사촌의 이 말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그날 당장 피칸 열매를 등이 욱씬욱씬 쑤실 정도로 주워오지만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서른 개나 구워야 하니까. 그 다음날은 밀가루나 계란같이 케이크를 굽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사러 간다. 이런저런 방법을 총동원해 마련한 돈은 사촌의 침대 밑 요강 아래 마룻바닥 널빤지 속에 미리 숨겨 놓았었다. 바람이 부는 날, 두 친구는 목초지로 달려갔다. 키우는 개 퀴니도 달려가 목초지에 뼈다귀를 묻었다. 연은 실에 묶인 채로 하늘을 나는 물고기처럼 꿈틀대고 두 친구는 잔디밭에 누워 귤을 까먹으면서 연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사촌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난 항상 몸이 아프고 죽어갈 때가 되어야 주님을 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절대 그런 건 아닐 거야. 마지막에 가면 우리 육신은 주님께서 이미 모습을 일찌감치 드러냈다는 것을 깨닫게 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물에.” 사촌은 손으로 구름과 연, 풀밭과 땅에 드러누워 뼈를 쥐어뜯는 퀴니를 한번에 다 담을 수 있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항상 보았던 것들에 주님의 모습에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거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오늘의 광경을 내 눈에 담아가고 싶구나.” 이것이 두 친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추억이다.(퀴니도 이듬해 뼈다귀를 묻었던 바로 옆에 묻혔다.) 나는 사촌이 그렸다는 동그라미를 상상 속에서 종종 그려본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이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 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다! 기억하고 싶어.’ 주위가 텅 빈 것 같아! 허전해!의 반대, 꽉 찬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올해 있었던가?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순간을 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동그라미 속은 온기로 가득차 있고 그 온기는 과거부터 우리가 해온 행동들의 정수 같다. 우리가 만들어낸 따뜻함 같다. 우리는 태어난 이유를 몰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일상은 초조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들로 가득차 있지만 그 일상 속 어딘가 이렇게 성스러운 순간이 있다. 어느 날, 우리의 가슴에 동그랗게 뻥 뚫린 빈자리. 그 빈자리는 빨리 채워지려는 속성이 있다. 그 빈자리를 머지 않아 다시 텅 빌 것으로 채우지 않는 것이 나의 새해 소원 중 하나다. 독자 여러분! 혹시라도 가슴에 차가운 빈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가 따뜻함으로 꽉 채워지는 순간을 내년에 꼭 맞이하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2013)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트루먼 커포티가 1956년에 쓴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는 글이다. 일곱살 버디는 예순살이 넘은 사촌과 살고 있다. 버디의 말에 따르면 사촌은 화장을 해본 적도, 욕을 해본 적도, 다른 사람이 나쁘게 되기를 바란 적도, 고의로 거짓말을 한 적도, 굶주린 개를 못 본 척한 적도 없다. 11월 하순의 어느 아침 백발의 사촌은 부엌 창가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나, 과일 케이크를 만들기에 좋은 날씨네. 케이크를 서른 개나 구워야 해.” 크리스마스 시즌은 매년 똑같이 11월의 화창한 아침 사촌의 이 말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그날 당장 피칸 열매를 등이 욱씬욱씬 쑤실 정도로 주워오지만 입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서른 개나 구워야 하니까. 그 다음날은 밀가루나 계란같이 케이크를 굽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사러 간다. 이런저런 방법을 총동원해 마련한 돈은 사촌의 침대 밑 요강 아래 마룻바닥 널빤지 속에 미리 숨겨 놓았었다. 바람이 부는 날, 두 친구는 목초지로 달려갔다. 키우는 개 퀴니도 달려가 목초지에 뼈다귀를 묻었다. 연은 실에 묶인 채로 하늘을 나는 물고기처럼 꿈틀대고 두 친구는 잔디밭에 누워 귤을 까먹으면서 연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사촌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난 항상 몸이 아프고 죽어갈 때가 되어야 주님을 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절대 그런 건 아닐 거야. 마지막에 가면 우리 육신은 주님께서 이미 모습을 일찌감치 드러냈다는 것을 깨닫게 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물에.” 사촌은 손으로 구름과 연, 풀밭과 땅에 드러누워 뼈를 쥐어뜯는 퀴니를 한번에 다 담을 수 있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항상 보았던 것들에 주님의 모습에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거지. 나는 세상을 떠날 때 오늘의 광경을 내 눈에 담아가고 싶구나.” 이것이 두 친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추억이다.(퀴니도 이듬해 뼈다귀를 묻었던 바로 옆에 묻혔다.) 나는 사촌이 그렸다는 동그라미를 상상 속에서 종종 그려본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이 동그라미 안에 있는 것 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다! 기억하고 싶어.’ 주위가 텅 빈 것 같아! 허전해!의 반대, 꽉 찬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올해 있었던가?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순간을 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동그라미 속은 온기로 가득차 있고 그 온기는 과거부터 우리가 해온 행동들의 정수 같다. 우리가 만들어낸 따뜻함 같다. 우리는 태어난 이유를 몰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일상은 초조하고 짜증나고 불안한 것들로 가득차 있지만 그 일상 속 어딘가 이렇게 성스러운 순간이 있다. 어느 날, 우리의 가슴에 동그랗게 뻥 뚫린 빈자리. 그 빈자리는 빨리 채워지려는 속성이 있다. 그 빈자리를 머지 않아 다시 텅 빌 것으로 채우지 않는 것이 나의 새해 소원 중 하나다. 독자 여러분! 혹시라도 가슴에 차가운 빈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가 따뜻함으로 꽉 채워지는 순간을 내년에 꼭 맞이하길 바랍니다. 해피 뉴 이어!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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