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 2
고형렬·사소 겐이치·리쟌깡 외 14명 지음/삼인·1만2000원
숨(통)은 틔우는 게 아니라고, 그냥 먼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은 긴장하면 숨을 참게 된다. 이때 의도적으로 숨을 깊이 쉬면, 긴장이 따라서 풀리는 게 순서다. 긴장은 결코 먼저 풀리지 않는다. 몸을 드나드는 바람, 숨이 먼저다.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 시인 동인은 ‘몬순’(계절풍)이란 이름을 가졌다.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 고형렬 시인의 주도로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다섯 명씩 열다섯 명의 시인이 3년 전 결성했다. 아시아라는 공간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와 결속을 시로 구현한다는 취지다. “바람이 숨막힘에서 빠져 나온다”(꾼니 마스로한띠). 이들이 스스로를 바람이라 호명한 이유 역시 막힌 숨을 스스로 쉬어보자는 뜻 아닐까.
동아시아 시인 동인 ‘몬순’에 속한 나희덕. 삼인 제공
몬순의 동인지 <몬순> 2호에는 신작 시 46편이 실렸다. 1호에 실린 서로의 시를 평한 산문 13편이 더해져 소통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한국의 고형렬, 김기택, 나희덕, 심보선, 진은영, 일본의 사소 겐이치, 나카무라 준, 시바타 산키치, 나무라 요시아키, 스즈키 히사오, 중국의 리쟌깡, 린망, 선웨이, 쑤리밍, 천량, 여기에 인도네시아 꾼니 마스로한띠, 에윗 바하르의 시가 특별히 초대됐다. 해당 국가의 대표적인 40~60대 중견 시인들이다. 몬순은 한중일이 중심이지만 다른 국가의 시인도 옵서버 형태로 꾸준히 참여할 예정이다.
“여기가 어디지요?/ 죽은 줄도 모르고 이따금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도 여자도 될 수 없었습니다. (…) 들린 발꿈치로,/ 한 번도 온전히 제 땅을 밟고 서 보지 못한 발꿈치로/ 고향집은 너무 멀어 자주 길을 잃습니다.”(나희덕 ‘들린 발꿈치’)
“사실 난 오늘의 나를 똑똑히 보고 싶다/ 초미세먼지가 자욱한 베이징/ 사래가 들어 부득이 고개를 숙인다/ 거울 속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개에 물렸던 발등의 상처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쑤리밍 ‘거울 속’)
동아시아 시인 동인 ‘몬순’에 속한 린망(중국). 삼인 제공
‘일본군 성노예’ 피해 등 침략과 전쟁에서 비롯된 과거와 오늘날 아시아 전체를 위협하는 환경오염 등 직면한 문제들이 고스란하다. 나카무라 준과 스즈키 히사오 등 일본 시인들은 <몬순> 1호에 실린 심보선의 시 ‘모국어의 저주’(“모르는 나라의 말을 하라/ 천국에 가고 싶거든”)에 특히 감응한 듯한 시를 내놓았다. “헤이트 스피치보다/ 친구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자”(나카무라 준). ‘정치적’이라고? 시인은 “이쪽에 있지도 않고 저쪽에 있지도 않고 죽은 자 쪽에 서 있을 뿐이다.”(선웨이) 번역을 거쳤지만 “생명체로서의 언어를 쓴다는 점에서 세계의 시인은 하나의 언어를 쓴다”는 발간사대로 감상에 큰 지장이 없다. 불통은 “모든 언어가 헤어지고 말았”기 때문, “너무 시적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시가 아니라 시적으로. 시의 본능이 언어를 초월한 유대라면, “우리는 너무 비본능적으로 사랑하지 않았을까”(고형렬).
동아시아 시인 동인 ‘몬순’에 속한 시바타 산키치(일본). 삼인 제공
뜻밖의 잔재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모습을 여기서 마주친다. 한국어로 번역된 하나뿐인 시집(<기억이 나를 본다>)을 몇년 사이 가장 아끼고 있었다. “심연으로 치솟는 시”(이경수), 세상을 뒤집어 보는 날카롭고 투명한 시선이 인상적인 시인이다. 리쟌깡이 생전의 그를 만났을 때 쓴 시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시의 황궁”을 엿봤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