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열화당(2017) 나는 지금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진행하고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을 제작중이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그렇게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도 치유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는 그 다정한 우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보고 싶다. 제작에 어려움은 있다. 섭외가 쉽지 않다. 한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우리 아들이 군대를 가요. 동생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알면 험한 말들 들을까봐 조용히 있고 싶어요.” 많은 유족들은 말한다. "돈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비난을 참기가 힘들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다는 것을 나도 이제 안다. 나는 그 두려움을 내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두려움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게 말하는 사람의 ‘깊은 고독’을 느낀다. 나는 타인의 깊은 고독을 알아가는 중인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힘이 필요하다. 친구의 얼굴을 한번 보거나 술 한잔을 마셔야 한다. 또 다른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자코메티 전시회를 보러 갔다. 자코메티의 깡마른 조각들을 보러 갔다. 자코메티의 조각들은 왜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는가? 장 주네보다 더 잘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 자기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뿌리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 “개개의 인간 존재가 마지막으로 모여들게 되는 지점, 더는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이 소중한 귀착점, 우리들 각자의 고독의 지점.” 부수적이고 하찮은 것을 덜어냈을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코메티의 대답이 깡마른 조각이라면 나는 힘이 없지 않다. 나는 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혹스럽게도, 상처가 만든 은총인 고독의 치유를 받고 있다. 자코메티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딱 한번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인간이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진실해질까 상상을 해봅니다. 가령 한번 죽고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우리의 삶을 에워싼 그 많은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자신을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은 것입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이죠.”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비밀스러운 고독을 품은 사람들이 자코메티의 조각 ‘워킹맨’처럼 내게로 걸어온다.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을 때, 한번 죽고 두 번째 삶을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 말을 한다. 많은 말들이 신비롭다. 현실의 무게를 뚫고 걸어나와서 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고독의 가치와 같다. 다시 장 주네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혼자다. (…) 내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나의 고독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나는 방송을 마친 그들이 쓸쓸한 길을 걸어가리라는 것을 안다. 그 고독을 사랑하지 않기란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 고독을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들의 고독과 사랑은 불멸할 것이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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