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이용재 옮김/윌북·1만5800원 1895년 4월, 아일랜드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가 런던에서 체포됐다. 다음날 한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오스카 와일드, 겨드랑이에 노란색 책을 낀 채로 체포’였다. 와일드는 ‘음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어찌된 영문일까? 19세기 서유럽에서 노란색은 음란한 색깔이었다. 프랑스의 선정주의 소설들이 선명한 노란색으로 표지를 장식한 탓이었다. 오늘날 선정적 출판물을 뜻하는 ‘빨간 책’이 당시 유럽에선 ‘노란 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노란색은 현대성과 아름다움, 퇴폐적 움직임의 상징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일부 화가와 사상가 들에게는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적 질서를 거부하는 색이기도 했다. 2012년 영국의 숙박업·관광 연구 저널에 따르면, 빨간색 옷을 입은 여종업원은 남성 고객한테 팁을 26%나 더 받았다고 한다. 빨간색은 전통적으로 권력, 욕망, 공격성을 상징한다. 서양에서 빨간색은 적어도 중세부터 섹스의 색, 매춘부의로 색으로 인식됐다. 모든 색에는 자기만의 이름과 상징이 있다. 모든 색은 정치적이다. 색감에 대한 인식도 시대와 문화와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랐다. 영국의 여성의복학자이자 작가가 쓴 <컬러의 말>은 다양한 색깔의 탄생부터 변천사, 색이 지닌 메시지까지 모두 75가지 색에 얽힌 형형색색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중엔 지금의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놓는 사실도 많다. 예컨대 아기 옷 색깔로 ‘소녀는 핑크, 소년은 파랑’이라지만, 이런 분류는 20세기 중반에야 나왔다. 꼭 100년 전인 1918년 6월 미국의 한 무역전문지에는 “소년은 핑크, 소녀는 파랑이 일반적으로 통하는 규칙이다. 핑크는 더 단호하고 강인한 색이고, 파랑은 더 섬세하고 앙증맞아 예쁘기 때문”이라는 글이 실렸다. 색은 신분이나 기능과도 관련이 깊다. 고상한 자줏빛, 또는 레드와인을 떠올리는 ‘티리안 퍼플’은 권력과 왕족의 색이었다. 이 색의 원료는 바다달팽이에서 얻는데, 한 마리에서 단 한 방울의 즙이 나오므로 25만마리를 잡아야 염료 1온스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희소성과 노동력 때문에 가격이 금은값에 버금갔다. 고대 로마에선 오직 황제만이 티리안 퍼플 옷을 입을 수 있었으며 위반자는 사형이었다. 반면 카키색(흙색)은 19세기 페샤와르(지금의 파키스탄 북동부)에서 인도군 수비대를 양성한 관리가 군복 색깔로 처음 도입했다. “흙의 땅에서 병사들이 보이지 않기를 바랐던” 의도의 결과는 혁신적이었다. “몇천년 동안 용사는 상대를 겁주기 위해 눈을 확 사로잡는 복식을 차려 입었”으나, 20세기 들어 항공 정찰과 무기의 발달로 눈에 잘 띄는 군복이 치명적 결과를 낳으면서는 카키색이 군대의 상징색이 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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