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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연구비 출납’만이 학술정책의 전부인가

등록 2018-06-14 19:36수정 2018-06-14 20:07

[한국학중앙연구원·한겨레 공동기획 : 학술정책 백년대계가 없다]

① ‘십년대계’ 인문한국
② 학술정책 누가 만드나
③ 활용되지 않는 학술 성과
④ 학술정책의 큰 그림 그리자
2016년 6월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제6회 도시인문학 국제학술대회’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6년 6월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제6회 도시인문학 국제학술대회’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학술정책’이란 무엇이며 어떤 주체들이 이를 이끌어가는가? 1979년 제정된 ‘학술진흥법’은 “‘학술’이란 학문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여 지식을 생산·발전시키고, 그 생산·발전된 지식을 발표하며 전달하는 학문의 모든 분야 및 과정을 말한다”(제2조 1항)고 규정한다. 또 “학술수준을 향상시키고 건전한 학술 풍토를 조성하며, 학술활동의 성과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것을 ‘정부의 책무’(제3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해 정부는 학술정책의 큰 틀을 짜고, 한국연구재단(연구재단) 같은 전문기관들에 실제 사업의 집행을 맡긴다. 여러가지 성격의 사업들이 있지만, 그 핵심은 대체로 학문 현장(주로 대학 사회)에 있는 학자들에게 국가의 연구비를 적절하게 나눠주고 학문적 성취를 진작시키는 데 있다.

■ 교육부·연구재단, ‘학술정책’ 주요 주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여러 부처와 산학협력 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공 분야에 견줘, 인문사회 분야는 그 지원체계의 전체적 틀 자체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교육부(학술진흥과)가 주무 부처이며, 연구재단의 인문사회연구본부(과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구실)가 주된 집행기관이다. 교육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은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지원의 전체 현황이 어떤지 보여주는 자료다. 2018년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지원 전체 예산 규모는 2668억원이며, 이는 ‘인문사회’(2290억원), ‘고전국역’(37억원), ‘한국학’(165억원), ‘학술연구기반구축’(176억원) 등으로 나눠진다. ‘인문사회’는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가 주로 관장하는 분야로, 다양한 형태의 개인 연구, 공동 연구에서부터 사회과학연구(SSK), 인문한국(HK) 등 대형 사업까지 지원한다.

민간의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인문사회 분야 학문은 사실상 정부의 지원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교육부와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가 주도하는 이 2700억원 규모의 지원 시스템이 오늘날 한국의 인문사회 분야 학문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0년대부터 본격화한 이 시스템은 20여년 동안 꾸준히 몸집을 불리는 한편 지원 사업들을 세분화하는 등 나름의 합리성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시스템이 인문사회 분야 학문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학계에서는 국가 연구비를 따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스템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는 본부에서 관장하는 전체 사업의 지원자 대비 평균 선정율이 34%라고만 밝힌다. 그러나 <한겨레>가 확인한 일부 연구지원 사업의 경우 10% 후반대의 선정율을 보일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지만 시스템의 문호는 좁다. 게다가 대부분의 연구지원 사업들은 1~3년 단위의 단기 프로젝트로 설계되어 있다. ‘학문후속세대-신진연구자-중견연구자-우수학자’ 등 학자의 생애주기별 지원 체계를 마련해놓긴 했지만, 실제로 개별 학자들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 구조다. 운 좋게 지원을 받더라도, 1~3년이면 곧바로 ‘연구 단절’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교육부·연구재단이 연구 지원 시스템
2700억원 규모로 인문·사회 분야의 토대
안정적·지속적인 지원에는 역부족

■ “‘저임금 비정규직 학술기술자’ 양산 시스템” “학문 분야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관료적인 시스템”이란 비판도 나온다. 2~3년 주기로 자리를 바꿔야 하는 교육부 공무원이 학문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정책의 큰 틀을 짜기는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 연구지원 체계는 ‘상향식’ 자유주제 공모 방식을 기본으로 삼으며, 학계 전문가들이 심사·평가 등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는 관료적이지 않은 운용 방식 같지만, 또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한다. 교육부와 연구재단 등 주요 학술정책의 주체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뒷말’이나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연구비를 형평성 있게 나눠주는 구실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연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따지기보다는,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지표로 성과를 환산하고 그것을 주어진 형식에 맞춤한 결과로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된다. 연구 지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한 인문학자는 “정작 연구의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연구비를 별탈 없이 ‘출납’하는 것만이 이 시스템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의제 개발 및 발굴 사업 부재”, “중장기 기획연구의 부재” 등은 연구재단의 정책연구 과제에서조차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이에 대해 교육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대규모 ‘하향식’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 정부가 앞장을 서면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다양한 형식의 지원 체계를 만들어두고, 최대한 많은 학자들이 돌아가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기본 방향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받은 정규직 교수들과는 달리, 대다수 비정규직 학자들은 1~2년이라도 정부의 지원 체계 밖으로 내몰리면 당장 연구는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인문학자는 “지금의 시스템은 ‘저임금 비정규직 학술기술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민간에서의 수요가 많지 않은 인문사회 분야 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자신의 연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새로운 시스템 설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인문사회 연구 지원’ 금액도 비율도 찔끔

정부 R&D 예산 중 인문사회 1.6%뿐

교원 수혜율도 인문학 11%-공학 49%

우리나라 정부가 연구개발(R&D)에 배정하는 예산 규모는 지난 10년 사이 갑절이나 늘어, 2016년에는 19조942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에 해당하는 연구개발비 규모는 7982억원 가량. 여기서 정책연구비와 경제인문출연금 등을 제외한 ‘순수’ 연구개발비 규모는 2990억원 가량이다. 전체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 ‘순수’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올해 연구재단의 본부별 예산 현황을 봐도, 인문사회연구본부 예산은 2720억원으로 전체 예산(5조1000억원)의 5.3%에 불과하다.

때문에 교육부, 연구재단 등 학술정책의 주요 주체들은 일차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 배정되는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 지원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2017년 4년제 대학에 지원된 중앙정부 연구비 현황을 보면, 전체 교원 가운데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책임자의 비율인 ‘수혜율’이 인문학은 11.3%, 사회과학은 15.7%로 나타났다. 자연과학(47.9%), 공학(49%) 등에 견줘 매우 낮은 비율이다.

전국 인문·사회과학대학장협의회 등 인문사회 분야의 주요 단체장들은 올해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과 잇따라 면담을 통해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비(R&D) 예산 가운데 2.5%를 인문사회 분야에 배정하는 원칙”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오는 2021년까지 현재 1.6%에 불과한 인문사회 분야 ‘순수’ 연구개발비의 비중을 2.5%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앞으로도 ‘2.5% 배정’을 기본 원칙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특정 예산의 비중을 사전에 정해두긴 어렵다. 다만 인문사회 분야가 소외되어선 안 된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만으론 학술정책을 바로세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늘날 인문사회 분야 학술정책의 총체적인 난맥상은, 중장기적인 밑그림 없이 ‘연구비 출납’에만 머무는 연구비 지원 시스템, ‘대학평가’ 순위 경쟁에 몰두하며 학과통폐합 등으로 갈수록 인문사회 분야를 줄여가고 있는 대학, 이에 순응하여 시스템이 요구하는 논문만을 양산하는 등 학문적 성취보다 신분 확보와 유지가 더 우선인 학계, 대중과 괴리되어 폐쇄적인 소수 집단에만 갇혀버린 학문 등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착종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 인문학자는 “현재 우리나라에 과연 ‘학술의 장(場)’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단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학계 일각에서 ‘국가학문위원회’(강내희 중앙대 명예교수), ‘한국식 사회과학원’(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 학술정책의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같은 맥락 위에 놓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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