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한길사·1만4500원 “하나의 삶에는 매번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전선(戰線)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동독 출신 작가 예니 에르펜베크(사진·51)의 소설 <모든 저녁이 저물 때>는 이 질문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의문문의 형태를 띤 위 문장이 사실은 감탄문에 가깝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다시 말해 본다면, 이 소설은 삶을 공격하는 숱한 죽음의 전사(戰士)들을 길들이고 그들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은 1권에서 5권까지 5개 ‘권’과 각 권 사이 네 ‘막간극’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형식은 소설 내용과 긴밀하게 조응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다섯 번 죽고 네 번 되살아난다. 1권에서 갓난아기인 주인공은 갑자기 숨이 멈춰 죽지만, 막간극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창문 바깥 창틀에 쌓인 눈을 한줌 퍼다가 아기 옷 속으로 밀어 넣는 ‘응급 처방’을 한 덕에 다시 숨을 쉬게 된다. 그렇게 살아난 아기가 열일곱살 나이로 1차대전이 끝난 직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생활하는 이야기가 2권을 이룬다. 물론 2권 말미에서 주인공은 다시 죽고, 막간극에서 되살아난 다음 3권에서 또다시 죽는다…. 3권은 스탈린의 철권 통치가 한창이던 1941년 모스크바를, 4권은 1960년대 초 동베를린을, 5권은 독일이 통일된 뒤인 1990년대 초 베를린을 각각 무대로 삼는다. 5권 말미에서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진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나는 한 세기를 때려눕혔어”라고 아들에게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한 세기에 걸친 삶과 죽음의 쟁투를 다루었다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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