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문학과지성사(2018) 샌프란시스코에는 1937년에 만들어진 금문교라는 다리가 있다. 해질 때 황금색으로 물드는 금문교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다리는 무척 높아서 다리 밑으로 비행기도 지나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 서듯 그곳에서 세찬 파도를 봤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험한 바다 위를 나는 작은 새의 쉼 없는 날갯짓에서 큰 감동을 받고 ‘나도 저 새 같아지리라’ 용기를 얻고 돌아서서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금문교는 슬픈 곳이다. 해마다 수십명씩 그곳에서 깊은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금문교에서 자살 방지 일을 하는 경찰 중에 케빈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은퇴했다. 케빈은 일하는 동안 수백명의 자살 시도자를 금문교에서 만났고 그 중 두 명이 자살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두 명이 자살한 것은 케빈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가슴 찢어지는 경험이다. 그들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사람과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세 번이나 악수를 했다. 그가 지상에서 마지막 한 말은 “케빈, 나는 가야 해요!”였다. 케빈은 방금 사귄 새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케빈이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새 친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자살 시도자에게 다가가는 그의 원칙이 있다. 그는 “안녕하세요, 나는 금문교를 순찰하는 경찰 케빈이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경찰이 아닌 그냥 케빈, 인간인 케빈. 그런데 케빈이지만 그냥 케빈이 아니고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라면 그 순간에는 트랜스젠더인 케빈, 상대방이 말기 암 환자면 그 순간에는 말기 암 환자인 케빈, 상대방의 가족이 자살을 한 사람이라면 그 역시 자살한 가족을 둔 케빈. 그렇게 한순간 상대방은 더는 내 판단의 대상에 불과하지 않을 수 있다.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꼭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악수하는 척하면서 손으로 끌어당기면 안 되느냐고 나는 물었다. 케빈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이 스스로 한 걸음 내딛길 바라니까요. 그들을 자살하고 싶게 만든 그 문제는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도 마음을 바꿔서 한 발자국 내딛으려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죽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 같으니까요. 가장 큰 용기는 남모르는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복잡성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거예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에 소개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이 구절을 읽으니 부드럽고 다정한 기분이 든다. 사랑할 때 우리가 그러듯이 관심과 애정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이동하는 것 같다. 늘 나로만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내 안에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쓸쓸한 일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 관심의 대상으로조차 삼을 수 없다는 것도 과하게 자기 만족적인 일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케빈 생각을 했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남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면 무슨 좋은 생각을 해보고,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 싶다. 다른 영혼들이 없었다면 추워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다른 영혼이 되지 못했다면 무슨 상상력이 있었을까 싶다.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문학과지성사(2018) 샌프란시스코에는 1937년에 만들어진 금문교라는 다리가 있다. 해질 때 황금색으로 물드는 금문교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다리는 무척 높아서 다리 밑으로 비행기도 지나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 서듯 그곳에서 세찬 파도를 봤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험한 바다 위를 나는 작은 새의 쉼 없는 날갯짓에서 큰 감동을 받고 ‘나도 저 새 같아지리라’ 용기를 얻고 돌아서서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금문교는 슬픈 곳이다. 해마다 수십명씩 그곳에서 깊은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 금문교에서 자살 방지 일을 하는 경찰 중에 케빈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은퇴했다. 케빈은 일하는 동안 수백명의 자살 시도자를 금문교에서 만났고 그 중 두 명이 자살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두 명이 자살한 것은 케빈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가슴 찢어지는 경험이다. 그들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사람과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세 번이나 악수를 했다. 그가 지상에서 마지막 한 말은 “케빈, 나는 가야 해요!”였다. 케빈은 방금 사귄 새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케빈이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새 친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자살 시도자에게 다가가는 그의 원칙이 있다. 그는 “안녕하세요, 나는 금문교를 순찰하는 경찰 케빈이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경찰이 아닌 그냥 케빈, 인간인 케빈. 그런데 케빈이지만 그냥 케빈이 아니고 상대방이 트랜스젠더라면 그 순간에는 트랜스젠더인 케빈, 상대방이 말기 암 환자면 그 순간에는 말기 암 환자인 케빈, 상대방의 가족이 자살을 한 사람이라면 그 역시 자살한 가족을 둔 케빈. 그렇게 한순간 상대방은 더는 내 판단의 대상에 불과하지 않을 수 있다.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꼭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악수하는 척하면서 손으로 끌어당기면 안 되느냐고 나는 물었다. 케빈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이 스스로 한 걸음 내딛길 바라니까요. 그들을 자살하고 싶게 만든 그 문제는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도 마음을 바꿔서 한 발자국 내딛으려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해요. 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죽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것 같으니까요. 가장 큰 용기는 남모르는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복잡성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거예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에 소개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이 구절을 읽으니 부드럽고 다정한 기분이 든다. 사랑할 때 우리가 그러듯이 관심과 애정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이동하는 것 같다. 늘 나로만 사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내 안에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쓸쓸한 일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 관심의 대상으로조차 삼을 수 없다는 것도 과하게 자기 만족적인 일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케빈 생각을 했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남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면 무슨 좋은 생각을 해보고,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 싶다. 다른 영혼들이 없었다면 추워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다른 영혼이 되지 못했다면 무슨 상상력이 있었을까 싶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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