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이빨 지음/위즈덤하우스·1만4800원 조카는 ‘족하’(足下)에 뿌리를 둔 말이다. 아랫사람을 존칭하는 데 쓰였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변수가 인생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쌍둥이 남동생의 아내와 그 자녀들, 그러니까 조카들이. ‘조카 관찰기’,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용일 거라 기대 말라. 이 만화는 조카가 아닌 ‘고모의 성장기’로 읽힌다. 아무리 귀여워도 조카랑 놀기는 딱 38분 정도만 할 수 있는 이기적이고 참을성 없고 구속을 싫어하는 비혼주의자가 고모 인생 1회차를 맞아 갈팡질팡, 안절부절, 좌충우돌한다. 조카는 존재 자체로 족하다. 그리고 그 곁의 고모는 부족하다. 이 만화 속 화자 ‘고모’ 남은남은 사서 고민한다. 첫째 조카가 기어다닐 수 있게 되자 ‘위험 가득한 세상 밖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걸 상상하다 사색이 되고, 둘째 조카가 딸이라는 게 알려지자 기뻐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한국의 ‘남녀평등 세계 순위’를 고민한다. “부질없어. 어차피 네 애 아냐”라는 핀잔에도 멈출 수 없다. 조카가 마주할 차갑고 기울어진 현실을 떠올리고, 조카를 지킬 방법까지 고민하겠다 다짐하는 조카 바보 남은남이다. 그의 고민과 다짐은 조카를 향한 최대한의 사랑 표현이다. 남은남은 인생의 또 다른 변수인 올케 송지현과의 관계에서도 성장한다. 올케 송지현은 배려와 예의를 철갑처럼 둘렀지만, 시누이 남은남은 그 철갑을 뚫고 ‘여성’으로서의 연결을 확인한다. 조카와 올케가 생긴 지은이의 실제 경험이 곳곳에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번 단행본은 여성 생활 미디어 <핀치>에 연재한 내용을 엮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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