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지음/푸른역사·1만9500원 우리 역사에서 늘씬한 ‘유선형’의 몸이 이상적 신체의 표준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거의 100년 전이다. 일제강점기이자 근대의 도입기이던 1920년대, “유선형은 ‘빠름’의 도형이었고 근대의 핵심가치”였다. 반세기 뒤인 1970년대 말에는 살을 빼는 다이어트가 선진문화가 됐다. 뚱뚱한 몸은 게으르거나 가난한 자의 몸이 됐고, 비만은 더이상 부귀의 과시가 아니었다. 나태를 경멸하는 이유도 시기마다 다르다. 1920년대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노동하지 않음’, 20세기 후반 대중소비시대에는 ‘운동하지 않음’이었다. 1930년대 서울 종로에 처음 등장한 교통신호기는 ‘사람이 통제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지휘하는 기계’의 시대를 알렸다. 공장 기계가 노동자들만 종속시킨 것과 달리, 교통신호기는 “남녀노소 장애 여부를 따지지 않고 거리에 나온 모든 인간의 몸을 통제”했다. <내 안의 역사>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기획의 두번째 책이다. 지은이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역사가 보통사람의 몸에 새겨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게 집필 동기다. 제1부 ‘개인’에서 시작해, 가족과 의식주, 직업과 경제생활, 공간과 정치, 가치관과 문화까지 시선과 공간을 확장하면서 우리 일상사와 사회경제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몸에 대한 시선의 역사, 가족을 관객으로 만든 티브이, 구멍가게에서 슈퍼마켓으로, 무방비 도시 서울, 음·양력의 공존 이유 등 52꼭지의 글 하나하나가 알찬 역사 지식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풍성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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