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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현대인은 석기시대 마음을 갖고 있다

등록 2019-01-25 06:01수정 2019-01-25 19:25

모든 심리 현상을 진화적으로 이해
진화심리학 최신 동향과 성과 설명
마음은 외부세계 왜곡해 인식하기도
도덕적 판단 준거로 삼을 이유 없어
진화한 마음-전중환의 본격 진화심리학
전중환 지음/휴머니스트·2만1000원

남성과 여성이 어떤 결혼 상대를 선호하는지 살핀 대규모 조사 결과가 있다. 데이비드 버스(65) 현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1984~1989년 세계 35개국 37개 문화권의 1만47명을 대상으로 비교-문화 연구를 했다. 남녀 모두 배우자가 똑똑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고, 믿음직하고, 건강하기를 바랐다. 차이도 났다. 여성은 남성보다 ‘물질적 자원을 많이 확보하는 능력’ 즉 경제적 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여성보다 젊음과 신체적 매력, 즉 외모를 더 중시했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차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인류가 먼 옛날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환경에서 “번식을 많이 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됐다”고 본다. 그럼,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거 봐라, 남성이 젊은 여성에 끌리고 여성이 돈 많은 남성에 끌리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 않느냐.’ 특정 선호와 행위를 합리화시킨다. 이런 말도 나올 수 있다. ‘모든 것을 사후적으로, 먼 옛날 인류가 처했던 환경과 적응, 번식만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는 게 무슨 과학이냐. 속물들을 정당화할 뿐이다.’ 진화심리학은 성차별과 폭력, 혐오 등을 당연시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자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진화한 마음>을 펴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는 개념을 꺼내든다. “어떤 현상이 자연적이므로 그 현상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면,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실에서 당위를 끌어내는 오류다. 진화심리학은 간통, 폭력, 외부인에 대한 편견 등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적 적응에서 나오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걸까. “설명은 정당화가 아니다.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이라는 연구 대상을 설명할 뿐 연구 대상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전염병과 암, 지진 등을 연구하는 까닭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없애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진화심리학도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진화심리학도 가설에서 도출한 예측을 실험실이나 현실세계에서 자료를 수집해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밝히며, 진화심리학의 토대를 이루는 이론, 최신 연구 동향과 주제를 다룬다. 이번 책이 “진화심리학 초심자를 위한 입문서가 아니다”고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

마음은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채집 생활에서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된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이다.  휴머니스트 제공
마음은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채집 생활에서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된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이다. 휴머니스트 제공
1950~60년대 젊은 진화생물학자들이 겪은 좌절에서부터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행동생태학 등을 거쳐 진화심리학이 탄생하기까지를 설명하며, 진화심리학은 “하나의 접근법”이고 “인간의 ‘모든’ 심리 현상을 진화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네 가지 핵심 원리가 있는데 “적응은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므로 오늘날에도 반드시 번식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책은 생존, 성과 짝짓기, 가족과 혈연, 집단생활, 학습과 문화, 응용 진화심리학 등으로 크게 나뉘고, 많은 주제에 대한 실험과 연구 결과 들을 담고 있다. ‘혐오’는 “주변 환경에서 병원체를 탐지해 미리 피하게끔 해주는 심리적 적응”이라고 한다. 캐나다의 한 교수팀은 병원체를 피하게 도와주는 혐오감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비만한 사람들이 불합리한 낙인을 받게 됨을 보여준다. “죽은 뒤에 후회 말고 지나치게 경계하라”는 ‘화재경보기 원리’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감염을 피하려는 원초적 혐오 정서가 노인, 장애인, 비만인 등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 편견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므로 정당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요즘 진화심리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있다고 한다. “인간 여성은 발정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여성이 남성의 성적 접근을 받아들이거나 먼저 성관계를 추구하는 성향은 여전히 배란주기에 걸쳐 선택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임기에는 일시적 성관계 상대로서 유전적 이득을 줄 수 있는 남성에게 더 이끌리는 식으로 배우자 선호가 변한다고 설명한다.

난잡한 일부일처제 또는 약한 일부다처제가 인간이 적응한 짝짓기 전략이라고 진화심리학은 본다. 휴머니스트 제공
난잡한 일부일처제 또는 약한 일부다처제가 인간이 적응한 짝짓기 전략이라고 진화심리학은 본다. 휴머니스트 제공
근친상간은 심각한 유전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를 회피하는 심리가 진화했을 것이다. “유전학, 진화생물학, 행동생태학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문학비평, 문화이론, 정신분석학 등에서 핵심적인 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은 어딘가 이상하다.” 실제로 동물들에서 아들이 어미에게 성적 관심을 보이거나 성관계를 하는 경우는 전혀 보고된 바가 없다고 한다.

“기쁜 소식이 있다. 정해진 지배자 계급이 따로 없는 평등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다. 약 250만년 전 초기 인류가 기원한 이래, 인류는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십 명 정도의 소집단을 이루어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진화 역사의 99% 이상을 보냈다.” 소규모 사회 구성원들이 똑같은 지위를 누리지는 않았지만 개인들 사이의 재산이나 권력의 차이가 거의 없는 사회였다.

듣고 말하기는 먼 옛날의 환경에서 적응적 지식이어서 쉽게 익히는 반면, 읽기와 쓰기는 문자가 ‘현대적 발명품’이어서 쉽게 익히지 못한다.  휴머니스트 제공
듣고 말하기는 먼 옛날의 환경에서 적응적 지식이어서 쉽게 익히는 반면, 읽기와 쓰기는 문자가 ‘현대적 발명품’이어서 쉽게 익히지 못한다. 휴머니스트 제공
“슬픈 소식도 있다.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쌓아 올린 수학 법칙과 발견 들은 최근의 발명품이므로 우리가 이들을 잘 배우게끔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수학을 배워야 한다. 듣고 말하기는 먼 옛날의 환경에서 적응적 지식이어서 쉽게 익히는 반면, 읽기와 쓰기는 문자가 ‘현대적 발명품’이어서 쉽게 익히지 못한다. 진보와 보수,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지와 제삼자의 특정한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도덕의 미스터리’, 정신장애를 설명하는 가설들도 흥미롭다.

진화심리학은 ‘번식’을 많이 하게끔 하는 자연선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자는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의 구별을 들어 변호한다. 지진 등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구호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한다. 진화심리학은 사심 없는 선행이 “주로 평판 상승이라는 이득을 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누군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해 이타심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타심은 근접, 평판 상승은 궁극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진화적 설명은 후자라는 얘기다.

자연선택은 마음이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게끔 설계하지 않았다. 유전자를 남기는 데 유리하도록 왜곡하기도 한다. “자동으로 우리를 특정한 행동양식으로 떠미는 심리적 적응을 무조건 신뢰하고 도덕적 판단의 준거로 삼을 이유가 없음을 뜻한다.” 이성적 능력도 진화된 인간 본성의 일부다. 책은 이렇게 맺는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본성을 거역할 수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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