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샴 마타르 지음, 김병순 옮김/돌베개(2018) 리비아 출신 작가 히샴 마타르의 논픽션 <귀환>은 1979년 리비아에서 탈출할 때 여덟살이었던 소년 히샴이 33년 뒤 리비아로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족들이 리비아를 탈출한 이유는 아버지 자발라가 카다피 독재정권에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 자발라는 이집트 비밀경찰에 납치되어 카다피에게 넘겨졌고 트리폴리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동료 죄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적어도 1996년까지 자발라는 아부살림에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은 알 수 없었다. 다른 감옥으로 옮겨졌을 수도 있고 처형당했을 수도 있다. 2011년 8월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세력이 망치로 감방문을 부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햇빛 속으로 걸어나왔다. 반체제 유력인사가 갇혀 있다고 알려진 창문 하나 없는 마지막 독방에서 한 눈먼 노인이 걸어나왔다. 그는 과연 자발라일까? 노인은 자신의 이름도 몰랐고 기억도 잃었다. 그 와중에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자발라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발라는 아니었다. 모든 정치범 수용소의 문들이 다 열렸지만 자발라는 없었다. 아버지는 실종되기 전 아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집트 농부로 변장하고 가짜 여권을 이용해서 이집트와 리비아의 국경을 넘어 할아버지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한두 시간 이상 계속되는 경우가 없는 짧은 야간 방문에 불과했지만 이런 방문은 세 차례 정도 이루어졌다. 그 이야기를 나눌 때 아버지와 아들은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한 다리를 아들의 옆구리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들은 엄지손가락으로 아버지의 발을 지압해주면서 이렇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보고 놀라지 않으셨어요?” “아니, 할아버지는 늘 나를 기다리고 계셨어.” 그때 히샴은 이렇게 말했다 “무모한 것 같아요.” 그 대화로부터 25년이 흐른 뒤 히샴의 생각은 달라졌다. 비록 한두 시간밖에 안 될지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전에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은 위험을 무릅쓸 것이다. 지난주에 식민지 역사박물관에서 한 장의 엽서를 보았다. 1944년 2월 중국에 끌려간 이병헌은 탈출을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이 엽서는 6월23일 가족에게 도착했다. 이병헌에 대한 기록은 1945년 3월24일 부대에서 ‘도망’쳤다로 남아 있다. 그 엽서는 그가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엽서가 되었다. 가족들은 몇 년 정도 그를 기다렸을까? 가족들은 어느 시점에 그가 죽었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을까? 혹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또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떠올랐다. 축구장 3개 정도 크기의 대형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우루과이 동쪽 남대서양에서 갑자기 침몰했고 승무원 24명(한국 선원 8명, 필리핀 선원 16명) 중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고 스물두명이 실종됐다. 그 실종자 가족 중 한명이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심해로 지금 다가가는 중이다. 미국의 심해수색업체와 함께 실종 선원 생사를 확인하고 블랙박스를 회수하기 위해서다. 가족들이 수색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25일뿐. 히샴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한두 시간밖에 안 될지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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