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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실물 꽃과 잎이 빚어낸 아름다운 사계절

등록 2019-02-28 18:44수정 2019-02-28 19:43

물감 한방울 안 쓴 ‘꽃누르미’ 그림책
꽃과 잎, 열매와 줄기로 동식물 그려내
사계절 생명 이야기도 보석처럼 담겨
봄 여름 가을 겨울-꽃과 잎이 그려 낸 사계절 이야기
헬렌 아폰시리 지음, 엄혜숙 옮김/이마주·1만5000원

겨울이 물러가고 있어요. 봄은 계절의 처음이지요.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불러서만이 아니에요. 많은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때이기 때문이지요. 동식물은 여름에는 태양 속에 활력의 노래를 하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을 준비하며, 겨울에는 아끼고 잠을 자요. 여러분은 계절을 어떻게 느끼나요? 봄에 피어나는 꽃들과 가을에 물드는 잎들은 계절의 대사가 아닌가요.

헬렌 아폰시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꽃과 잎으로만 만든 책이에요. 펜 한 줄, 물감 한 방울 들어가지 않았대요. 오롯이 작가가 채취하거나 직접 기른 꽃과 잎, 열매와 줄기 등이 모든 것을 이루었어요. 이렇게 식물을 말려 수분과 공기를 제거하고 그린 그림을 압화, 또는 우리말로 ‘꽃누르미’라고 해요. 이 책에서 계절의 대사들은 순환하는 시간을 따르지 않고 한창의 모습 그대로 당시의 계절을 노래합니다.

노래는 두 종류예요. 첫째는 제철 꽃과 풀의 모습 그대로 드러내서예요. 봄에 나는 가시자두, 버즘나무, 딱총나무 등의 잎이나, 가을의 화려하게 물든 단풍을 직접 말려서 붙였죠. 마치 쉬운 도감처럼 그 계절의 식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하지만 이 책에서 더 돋보이는 노래는 지은이가 꽃과 잎을 배치해 드러내는 새로운 패턴의 아름다움이에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식물의 자연색과 모양이 작가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섬세하게 붙여 만들어낸 패턴을 이루고, 이 패턴이 모여 새, 나비, 토끼, 여우 등으로 되살아나요. 그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반짝이게 할 정도의 매력이 있죠.

그렇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름다운 조형을 감상하기 위한 목적의 책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 책에는 꽃과 풀이 사라진 회색 숲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계절 생명의 이야기가 작은 보석처럼 담겨 있거든요. 여러분은 알고 있었나요, 봄날 한 줄로 헤엄치는 오리 가족의 어미가 새끼들을 쓰다듬는 이유를요. 새끼 오리는 어미 오리처럼 깃털에 방수 기름이 있지 않아 물에 쉽게 가라앉는다고 해요. 그래서 어미가 수시로 자신의 깃털을 비벼준다고 하네요. 어미가 새끼들에 눈을 떼지 않는 이유는 꼭 외부의 위험 때문만이 아니었던 거죠. 가을 사슴의 뿔에 종종 고사리와 풀들이 얹혀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요? 풀을 뜯다가 우연히 엉킨 게 아니라 짝짓기를 앞두고 다른 수컷과 겨루기 전에 더 무섭게 보이려고 일부러 얹어놓기도 한대요.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실제 자연물과 어우러져 눈과 머리가 모두 즐겁답니다.

이 책은 아폰시리의 첫 책이라고 해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는 자신의 꽃누르미 패턴을 옷, 가방, 시계 등의 상품으로 선보여 먼저 알려졌다고 해요. 올 여름에는 바다 식물 꽃누르미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겠죠? 0~7살.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림 이마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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