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1만9800원
한스 로슬링(1948~2017)은 스웨덴의 의사이자 공중 보건 전문가, 통계학자였다.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를 공동 설립했다. “사실(팩트)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평생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기관, 세계은행,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수많은 강연을 했다. 강연을 마칠 때 가끔 그는 고대 인도의 ‘묘기’를 선보였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1809년산 스웨덴 군용 검(칼)을 들어 입에 집어넣었다. 청중들은 기겁했다. 그런데 검은 목구멍으로 쑥 들어갔다. 속임수가 아니었다. “검을 삼키는 이유는 청중에게 직관이 얼마나 엉터리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검을 삼키기가 불가능해 보이고, 앞서 제시한 세상에 관한 자료가 기존 생각과 크게 충돌하더라도, 그것은 가능한 일이자 사실임을 알려주고 싶어” 한 행동이었다. 식도가 납작해서 검처럼 납작한 것은 목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다고 한다.
로슬링과 그의 아들 부부가 함께 쓴 <팩트풀니스>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무지가 어디서 비롯하는지를 짚고, 세상을 사실대로 보는 길로 이끈다. ‘무지’는 어리석다는 게 아니라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사실충실성’이라는 의미로, 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뜻한다. 가짜 뉴스나 선전 선동, 언론의 편파 보도와 이에 휘둘리는 세태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가짜 뉴스가 세계관을 왜곡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를 단지 오해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항상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본능’들을 짚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들을 권한다. 극빈층의 비율, 기대수명, 세계 인구의 추이, 자연재해 사망자 수, 어린이 예방접종 비율, 여성의 교육 기간 등 많은 데이터를 제시하며 우리 머릿속 세상과 실제 세상의 괴리를 전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추천하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지난해 미국 대학 졸업생들에게 전자책을 선물해 화제가 됐던 책이기도 하다.
중간소득 국가는 세상을 둘로 나누는 사고방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범주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저소득 국가나 고소득 국가가 아닌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김영사 제공
지난 20년 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의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①거의 2배로 늘었다. ②거의 같다. ③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한국을 포함해 14개국 1만2000명한테 물은 결과, 정답을 맞힌 사람은 고작 7%였다. 10명 중 1명도 채 안 된다. 정답은 ③이다. 로슬링은 교육, 인구, 기후변화 관련 등 13개 문제를 냈는데, 평균 정답율은 16%에 그쳤다. “결과는 눈 감고 찍을 때보다도, 침팬지보다도 낮았다.” 찍어서 맞힐 확률은 33%다. 똑똑하다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의료계 연구원들의 점수는 더 참담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여겼다.” 저자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그 이유로 꼽는다. 이 세계관은 ‘극적 본능’ 탓에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10가지 본능들을 살핀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이른바 ‘간극 본능’이다. 세상은 둘로 나뉜다는 “거대한 오해”이다. 선진국-개발도상국, 저소득층-고소득층의 구분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 인구 중 몇 퍼센트가 저소득 국가에 살까?’라는 물음에, 다수가 50% 이상이라고 답했는데, 실제로 세계 인구의 9%만 저소득 국가에 산다. 세계 인구의 75%는 저소득 국가도 고소득 국가도 아닌 중간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로슬링은 세계를 두 집단으로 나누지 않고 소득 수준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방식을 제안한다. 1999년 세계은행 직원들한테 첫 강의를 하고 검을 목구멍에 집어 넣었다가 뺀 지 17년이 흐르고, 14차례나 더 강의한 뒤에야 세계은행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게 됐다고 한다. “현실은 그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사실은 인구 대다수가 존재한다.” 간극 본능을 억제하려면 ‘다수’를 보라고 말한다.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부정 본능’도 오해를 부른다. 30개 국가의 사람들한테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는가, 나빠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대로라고 생각하는가?’ 물었더니 모든 국가에서 절반 이상이 ‘점점 나빠진다’고 답했다. 한국은 그 비율이 네 번째로 높았다. 저자는 세계가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담은 32가지 항목의 데이터를 제시한다. 예전은 대부분 더 좋았던 게 아니라 더 나빴다. “부정 본능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 나빠진다고 말하는 건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희망을 포기하는 건 부정 본능과 그에 따른 무지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고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우리가 손가락질하기 좋아하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사악한 경영인, 거짓말하는 언론인, 외국인을 꼽는다. 이밖에도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다급함 본능 등이 다뤄진다.
책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저절로 나아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로슬링처럼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염병·질병과 싸우며 인류의 진보를 위해 분투한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느낌’이나 ‘본능’이 아니라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고 판단하자고 강조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를 볼 수 있고, 더욱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