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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영혼을 침식한다

등록 2019-03-29 06:01수정 2019-03-29 19:45

불평등-건강 천착 윌킨슨·피킷 저서
소득불평등 크면 남의 시선 더 의식
열등감 또는 과대망상 형태로 반응
“경제 민주주의로 불평등과 싸워야”
불평등 트라우마-소득 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심리적 영향력과 그 이유
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 이은경 옮김, 이강국 감수/생각이음·1만9000원

불평등과 건강 문제를 천착해온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사회역학)와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공공보건역학)는 2010년 <영국정신의학저널>에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견줘 정신질환 비율이 3배까지 높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이 10명 중 1명 미만이었는데, 영국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5명 중 1명, 미국에서는 4명 중 1명 이상이었다.

<불평등 트라우마>는 윌킨슨·피킷 교수의 최근 저서로 2009년에 낸 <평등이 답이다>의 후속이다. 이전 책에서 소득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쁜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불평등이 사람의 사고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게 살핀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에 민감하고 정신적으로 취약해진다는 많은 연구 사례를 제시하며, 더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리처드 윌킨슨(왼쪽)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와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가 지난해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리처드 윌킨슨(왼쪽)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와 케이트 피킷 요크대 교수가 지난해 10월3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럽연합 회원국 등 31개국 성인 3만5634명을 대상으로 ‘나의 고용 상황이나 소득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와 남의 시선에 더 불안해하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루마니아·포르투갈 등 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 지위 불안이 높게 나타났고, 덴마크·스웨덴처럼 비교적 평등한 국가들에선 낮았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판단할지를 더 걱정한다는 뜻이다. “지위 불안의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다.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불안은 특히 강력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회적 평가 위협’에 반응하는 방식은 둘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리는데, 소득이 낮은 계층이 그러기 십상이다. 영국에서 소득 최하위 계층에 속한 남성은 최상위 계층에 속한 남성에 견줘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35배 높았다. 우울증은 “복종해야 하는 상황 또는 패배를 멈추거나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기인”하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열등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가능성도 높다. 불평등이 사회적 지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탓이다.

정반대의 반응도 있다. ‘자기고양적 편견’ 또는 ‘기만적 우월감’으로 자신을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보는 ‘과대 망상’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개인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강력한 동기를 지닌다.” 자기도취는 관심끌기, 자만, 자신의 재능과 업적을 과장하는 경향, 공감 능력의 결여 등을 특징으로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예다.

지은이들은 불평등이 커지면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날 뿐 아니라, 그런 성향이 훌륭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경쟁이 협력보다 중요해 보이는” 치열한 경쟁 환경을 만든다고 짚는다. 기업 경영자 39명과 정신병원에 감금된 환자 768명 가운데서 추출한 표본을 비교해 보니, 기업 경영자들이 ‘자기애성’ ‘강박성’ 등 여러 부정적 기질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영국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낮은 자존감에 절망하든 자기애라는 가면 뒤에 숨든, 사회 불안 수준이 높다는 말은 사람들이 안심하거나 자신감을 북돋우거나 자의식의 과잉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버팀목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술과 마약, 쇼핑 등에 의존하는 ‘중독’은 “가짜 해결책”의 하나다. ‘과시적 소비’도 지위 불안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뿌리 깊은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왜 인간은 서로의 평가에 그토록 민감할까?’ 지은이들은 진화심리학에서 대답을 찾는다. 유인원과 인류의 중간단계인 선인류의 서열제와 수렵·채집을 하던 현생인류의 비교적 평등한 사회에서 물려받은 심리적 유산이라고 설명한다. 서열제는 사회적 지위에 극도로 예민한 성향을, 수렵·채집 사회는 배제에 대한 걱정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물려줬다는 것.

지은이들은 사회적 위계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쓰이는 ‘능력주의’ 사고를 비판하며 “타고난 재능 차이가 사회 위계 내 위치를 결정하기보다, 사회 위계 내 위치가 능력과 관심사, 재능을 결정한다는 말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한다. 불평등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사람들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 불평등과 싸우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인데, 지은이들은 노동자들의 기업 경영·소유 확대 등 경제 민주주의가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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