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공주처럼이금이 글, 고정순 그림/사계절·9000원
‘망나니’는 옛날 조선 시대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이를 가리키던 무서운 말이다. ‘망량’이라는 도깨비의 일종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어느 모로 봐도 ‘공주’와 함께 쓰일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데 둘이 만나 동화 속 공주의 틀을 깨는 동화가 나왔다. 이금이 작가의 <망나니 공주처럼>이다.
작은 왕국에 전해 내려오는 ‘망나니 공주의 전설’이 있다. 제멋대로 자란 공주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떠나 왕국이 한때 폐허만 남았었다는 이야기다. 왕국의 지금 공주, 앵두는 망나니 공주처럼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왕궁에서 품위를 지키는 것도 버거운 앵두에게 어느 날 위기가 닥쳐오는데, 일주일 동안 민가 체험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일주일을 품위를 지키며 버텨야 하나….’
막상 민가를 찾은 앵두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는 어른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또래 친구, 자두에게서 느낀다. 그리고 뭐든지 잘하는 자신 때문에 왕국 어린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는 푸념도 듣게 된다. 자신 역시 ‘망나니 공주 전설’ 탓에 어쩌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앵두에게 자두는 그 전설이 실은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며, 반전의 뒷부분이 있음을 알려 주는데….
<망나니 공주처럼>의 매력은 성 역할을 아이 때부터 일찌감치 고정 짓는 ‘공주 이야기’의 틀을 깨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민가 체험 마지막날 앵두와 자두가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길을 나서며 자신들이 “새로운 전설”이 될 것을 다짐하는 결말은 동화가 현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힘이 있다. 망나니 공주가 되어선 안 된다는 부담에 매여 있는 앵두와 그런 앵두 탓에 힘들었던 자두의 모습은 꼭 성 역할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할 일들이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쉽게 와 닿을 수 있다. 이금이 작가가 섬세하게 풀어 놓은 이야기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을 만나 더 빛을 발했다. 초등 1~2학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림 사계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