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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화를 추동한 또 하나의 힘 ‘별의별 아름다움’

등록 2019-04-19 06:01수정 2019-04-19 19:40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 일원론에 맞서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 독자성 강조
“암컷 성적 자율성, 미적 진화에 결정적”
아름다움의 진화-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동아시아·2만5000원

1859년 <종의 기원>을 발간해 인류에 거대한 충격을 던진 찰스 다윈(1809~1882)에게 수컷 공작새는 골칫거리였다. 1860년 식물학자인 미국인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라고 썼다. 화려한 수컷 공작의 깃털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다른 형질과는 달리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적자 생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수의 진화생물학자는 “성적 장식물과 과시가 진화한 이유는 그 장식물이 배우자의 자질과 조건에 대한 정직한 정보를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름다운 깃털은 우수한 형질을 갖고 있음을 뜻하고, 암컷은 그런 수컷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암컷의 성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행동도 변화시킨다. 다섯 마리의 성숙한 수컷 푸른마나킨 그룹이 횃대를 방문한 녹색 암컷(맨 왼쪽)에게 협응적이고 협동적인 ‘옆으로 재주넘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그룹의 묘기가 마음에 들면 암컷은 그중 지배적인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 Jo?o Quental, 동아시아 제공
암컷의 성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행동도 변화시킨다. 다섯 마리의 성숙한 수컷 푸른마나킨 그룹이 횃대를 방문한 녹색 암컷(맨 왼쪽)에게 협응적이고 협동적인 ‘옆으로 재주넘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그룹의 묘기가 마음에 들면 암컷은 그중 지배적인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 Jo?o Quental, 동아시아 제공
리처드 프럼(58) 미국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의 <아름다움의 진화>는 이런 견해에 반기를 든다. 그는 “성적 장식물은 배우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양쪽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화는 심지어 ‘퇴폐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화려한 깃털은 우월한 형질 표지가 아닌 ‘실용성 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지은이는 ‘성선택’을 ‘자연선택’의 하나의 하위 형태로 여기는 견해를 비판하고,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으로 진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는 독자적인 진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진화에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진화로 논의를 넓힌다.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바우어는 둥지가 아니라 오로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을 요량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암컷이 ‘데이트 폭력’을 당할 위험을 감소시킨다. ⓒ Tim Laman, 동아시아 제공
수컷 새틴바우어새는 진입로형 바우어를 지으며 주변에서 발견한 감청색 물건으로 앞마당을 장식한다. 바우어는 둥지가 아니라 오로지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을 요량으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암컷이 ‘데이트 폭력’을 당할 위험을 감소시킨다. ⓒ Tim Laman, 동아시아 제공
지은이는 “‘진짜 다윈’과 ‘정통 다윈주의’를 권좌에 복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다윈이 1871년에 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주목한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진취적인 점은 미학적 성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자연계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진화적 기원을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동물적 욕구의 결과’로 파악했다. 이 생각이 급진적인 이유는 생명체(특히 암컷)를 종 진화의 능동적 주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한 세기 반 동안 간과되고 왜곡되고 무시되고 거의 잊혀졌다.”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인 앨프리드 월리스(1823~1913)가 공격에 앞장섰다. 그는 1889년 출간한 <다윈주의>에서 “나는 자연선택의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단언하며, 암컷의 선택에 의존하는 성선택이란 개념을 기각한다”고 했다. 자연선택으로 진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이후 학계를 지배했다.

이런 ‘적응주의 진화론’을 반박하기 위해 지은이는 새들의 성생활을 살펴본다. “새는 미적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다윈도 “새들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심미적이다. 물론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라고 했다. 지은이는 지구상의 1만종의 조류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관찰했다. 화려한 외모를 뽐내는 수컷 새들의 마이클 잭슨 뺨치는 ‘문 워크’ 등 기발한 구애행동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암컷은 ‘노련하고 냉철한 감정가’다. 구애행동은 “배우자의 자질에 관한 정보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의적이고 미적인 배우자 선택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한다. 수컷의 외모와 구애행동은 암컷의 성적 선호와 욕구, 즉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 암컷은 심미적 존재, 수컷은 암컷을 매혹하려 노력하는 존재다. “세상에는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보겔콥바우어새 수컷은 오두막집 모양의 앞마당에 이끼 정원을 조성하고 신기한 물건들과 재료들로 장식한다. ⓒ Brett Benz, 동아시아 제공
보겔콥바우어새 수컷은 오두막집 모양의 앞마당에 이끼 정원을 조성하고 신기한 물건들과 재료들로 장식한다. ⓒ Brett Benz, 동아시아 제공
중남미 에콰도르에 사는 곤봉날개마나킨 수컷은 날개로 마찰음을 내 노래하는 ‘미적 혁신’을 이뤘는데, 비행에 최적화된 날개뼈까지 포기한 결과다. 진화에서 아름다움이 생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며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선택이 종의 쇠퇴와 멸종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절묘하고 아름답고 미적으로 극단적인 생물이 극히 드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컷 오리는 강제교미를 시도한다. 이에 맞서 암컷은 수컷의 생식기가 생식관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생식기 구조를 갖추는 쪽으로 진화했다. ‘성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투쟁이다. 오리 종을 대상으로 친자확인 검사를 한 결과, 한 암컷 오리의 교미 가운데 40%는 강제교미지만, 그의 둥지에서 길러지는 자녀 중 강제교미를 통해 낳은 자녀는 2~5%에 그쳤다. “배우자 선택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폭력적 시도가 곳곳에 깔려 있지만, 암컷의 배우자 선택이 우위를 유지하는 한 아름다움은 계속 발전하기 마련이다.”

수컷 청란의 4번 둘째날개깃에서 3D 황금색 공의 복잡한 색상 패턴이 자세히 드러난다. ⓒ Michael Doolittle, 동아시아 제공
수컷 청란의 4번 둘째날개깃에서 3D 황금색 공의 복잡한 색상 패턴이 자세히 드러난다. ⓒ Michael Doolittle, 동아시아 제공
책은 수컷의 성적 과시행동과 암컷의 미적 선호가 ‘공진화’함으로써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 향상된 ‘미적 리모델링’을 보여준다. 암컷의 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행동도 변화시킨다. 이것이 수컷을 지배하도록 암컷이 진화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힌다. “단지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진화했다.”

새의 경우 성선택과 아름다움을 추동한 쪽은 암컷이었지만, 인간은 양성이 모두 배우자 선택에 관여한다. “인간 남성의 성적 까다로움은 유인원의 생명의 나무에서 오로지 인간의 가지에만 나타난 배타적 특징이다.” 이는 남성이 자녀를 돌보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과 관련된다. 남성의 성적 선호와 함께 여성의 성적 장식도 공진화했고, 역방향으로도 진행됐다. “생식기에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 다른 유인원보다 작은 송곳니 등은 남성의 폭력적 성향이 여성의 선호를 통해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남성의 공격성이 약해지고 인류의 협동적인 사회적 기질과 사회적 지능이 진화한 메커니즘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여성의 배우자 선택을 통한 미적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 지은이는 “여성의 쾌락 추구”가 인간의 아름다움과 섹슈얼리티 진화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러면 오늘날도 여성이 성적·사회적 자율성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성의 권력, 성적 지배, 사회적 위계질서(즉 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발달해 여성의 성적 자율성 확대에 대한 대응조치로 수정·생식·양육투자에 관한 남성의 지배를 재확립했다.” 여성의 성적·사회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문화적 투쟁이 공진화해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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