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
필립 샌즈 지음, 정철승·황문주 옮김/더봄·2만8000원 리비우, 렘베르크, 로보프, 리보프…. 한 도시의 다른 이름들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령인 리비우는 유럽 전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휩쓸린 1914년부터 1944년까지 30년 새 통치 세력이 여덟 번이나 바뀌었다. “20세기 혼란스러웠던 유럽의 축소판, 문화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유혈 분쟁의 중심지”였다. 리비우는 인류 문명사에서 또 다른 이유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국제 법정에서 적용된 ‘제노사이드’(민족말살·대량학살)와 ‘인도에 반하는 죄’라는 개념을 각각 처음으로 창안한 라파엘 렘킨과 허쉬 라우터파하트가 리비우 대학 출신이다. 두 사람은 같은 교수에게 배웠고, 유대인 핏줄이란 이유로 나치에게 가족을 잃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변호사이자 점령지 폴란드 총독이었던 한스 프랑크에 대한 전범 재판에 검사팀으로 참여하기 전까지 서로를 몰랐다. 저명한 국제인권변호사 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는 국제사회에 ‘정의의 기준’을 제공한 두 개념의 탄생과 의미를 추적한 책이다. 2010년 지은이가 리비우의 한 대학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샌즈는 흥미롭게도 리비우가 고향인 외조부, 리비우 출신의 두 법학자, 나치의 엘리트 관료 등 4명의 사내를 주인공으로 세워, 각자의 삶을 씨줄날줄로 엮으면서 격동의 20세기 유럽사를 재구성한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관심이 깊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광주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정의가 외면당하거나 부당하게 실현됨으로써 갖게 된 각자의 개인적이고 예민한 상처”에 대한 각별한 관심도 표명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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