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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배 만들던 사람들이 보내는 절박한 메시지

등록 2019-04-26 06:01수정 2019-04-29 09:56

나, 조선소 노동자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기획) 지음/코난북스·1만5000원

2017년 5월1일 14시52분,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프로세스 모듈 건조 현장. 5호기 800t 골리앗 크레인과 32t 지브형 크레인이 충돌해 지브 크레인이 낙하했다. 크레인이 떨어진 메인 데크 위에는 노동자 100여명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마침 모여 있었다. 경력 4년차이자 당시 데크 위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고 있던 김명진(가명)은 이렇게 기억한다. “저는 멀쩡하고, 반대쪽으로 뛴 행님은 붐대는 피했는데, 붐대 와이어줄이 때려가지고 다쳤어요. 사람이 그렇게 날라가는 건 처음 봤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크레인을 피하지 못해 숨진 사람은 6명, 부상자는 25명에 달하는 대형 사고였다.

산업재해 현장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은 사망자나 부상자뿐만이 아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 모두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호소한다. 2017년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던 노동자 9명의 구술 증언이 <나, 조선소 노동자>로 묶였다. 노동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창거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산재추방운동연합이 구술 기록 활동을 시작했고, 여러 인권기록 활동가와 심리상담 활동가들이 합류해 작업을 도왔다.

노동자들의 증언에는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숨진 동료를 향한 미안함이 실타래처럼 뒤엉킨다. 당시 사고 사망자 명단에는 김명진이 속했던 미장팀의 막내도 포함됐다. 김씨의 설득으로 미장팀으로 옮긴 지 하루만에 당한 사고였다. “이 친구 괜히 내가 일하자고 해갖고 ‘내 때문에 죽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친 행님도 정신 차리자마자 ‘막내 죽었다’ 하니까 울더라고요.” 트라우마는 이어졌다. 잠도 못자고, 자꾸 악몽을 꿨다. 머리 위에 무엇인가 있으면 불안해졌다. “아파트에서 누가 이사를 하는지 사다리차가 보이잖아요? 오다가 그걸 보고는 안으로 돌아나왔죠.”

‘충돌·낙하·붕괴·협착·전도·폭발·소음·무리한 동작·유해광선·감전·분진·산소 결핍 질식·유기용제….’ 9명의 증언에는 조선소 현장에서 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숱하게 언급된다. 빠듯한 공기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은 뒤로 밀리고, 숙련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된다. ‘작업 물량을 단기간에 처리하는 10~30명 단위의 작업팀’을 뜻하는 ‘물량팀’, ‘장비와 인원을 집중투입해 휴식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공사, 또는 이를 하는 노동자’를 의미하는 ‘돌관’ 등의 용어는 조선소 현장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 조선소 노동자>는 사고를 목격한 이들이 숨진 동료와 그 가족에게 보내는 애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재해 노동자, 유가족, 트라우마 피해 노동자인 9명은 자신에게 닥쳤던 일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어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증언에 나섰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324명에 달한다. 문장으로 정리된 이들의 다짐은 노동자의 죽음과 공존하는 사회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사고도 나고 실수도 할 수 있죠. 그래도 좀 덜 나게, 큰 사고 날 것을 작은 사고로 줄일 수 있게 자꾸 뭐라도 누구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계속 관심을 갖고 해야할 것 같아요.”(김종배)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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