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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저기 잉잉 우는 집채만 한 것이 무엇이오?

등록 2019-05-10 06:00수정 2019-05-10 19:51

방정환의 익살 넘치는
‘조선 시골 쥐’의 모험
100년 전 생활상 견학
시골 쥐의 서울구경방정환 글, 김동성 그림, 장정희 해설/길벗어린이·1만3000원

“집채만 한 것이 달아나는 것은 전차라는 것입니다. 늙은이나 어린애나 아이 밴 여자들이 타고 다니는 것이지요.”

지금은 우스꽝스럽게 들리지만, 100년 전 서울거리에서 오갈 법한 얘기다. 짐차를 두세 번 갈아타고 천신만고 끝에 난생 처음 서울 구경에 나선 시골 쥐는 전차와 자동차의 속도에 눈이 핑핑 돌아가고 가슴이 울렁울렁거린다.

길벗어린이 제공
길벗어린이 제공
<시골 쥐의 서울구경>은 흔히 읽히는 이솝우화라며 밀쳐놓기 쉽다. 그러나 이 동화는 소파 방정환이 1926년 <어린이> 10월호에 발표한 창작동화다. 93년의 시간을 건너 김동성 그림작가의 미감으로 재현한 1920년대 경성 풍경은 정밀하다 못해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시골 쥐는 당시 조선 어린이들의 꿈을 대리해 ‘신문물 견학’에 나서는 존재다. ‘이야기꾼’ 방정환은 이솝우화의 도식을 벗어난 서사 구조로 해학적인 조선 이야기로 엮어냈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방정환은 외국동화를 번역할 때에도 조선의 형편을 묘사하고, 집이나 거리, 의복, 음식도 자연스럽게 조선식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해설했다.

길벗어린이 제공
길벗어린이 제공

고속도로가 깔리기 전에는 태어난 곳의 십리 반경 안에서 붙박고 사는 게 보통사람의 일생이었다. 서울은 감히 가보기 힘든 환상 속의 공간이었다. 동화 속 시골 쥐도 “죽기 전에 한 번 서울 구경이나 하려고”, “벼르고 별러서 간신히” 왔다.

시골 쥐에게 서울은 “기쁜 것 같고 시원한 것” 같은 복잡다단한 곳이다. 한강철교는 “어떻게 무서운 소리가 크게 나는지” 기가 질리고, 지금의 서울역인 ‘남대문 정거장’에서는 “하도 어마어마해서 어디가 북쪽인지 어디가 남쪽인지” 분간도 할 수 없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안경을 낀 ‘신문물의 안내자’ 서울 쥐가 없었다면 ‘거대한 쇳덩이’ 전차에 깔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시골 쥐의 눈에 비친 서울 사람들은 난리가 난 것처럼 황급히 뛰어다닌다. “저렇게 바쁘게 굴어도, 돈벌이를 못하는 때가 많다”는 서울 쥐의 설명을 들으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밑바닥 도시민들의 삶은 고달프다는 것을 목격한다.

길벗어린이 제공
길벗어린이 제공
친절한 서울 쥐는 고양이 없는 여관을 찾느니 자기네 양옥집으로 가자고 이끈다. “예? 양옥집이에요? 훌륭한 집에 계십니다그려.” 아무나 살 수 없었던 양옥집에 대한 동경이 엿보이는데, 재밌는 건 서울 쥐의 양옥집이 ‘빨간 우체통’이란 사실. 편지와 신문의 집결지 우체통은 문명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소품이다. 방정환의 익살스런 설정 너머 의도가 읽힌다. “청요리 찌꺼기와 양과자 부스러기”도 문명의 다른 이름이다. 시골 쥐는 흑사병 소식을 접하고 기계문명에 압사당할 수도 있는 화려한 도시의 뒤켠을 점점 깨달아가는데…. 그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릴까?

이 ‘방정환 동화’는 황순원의 <소나기>, 정채봉의 <꽃그늘 환한 물> 등 문학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으로 담아온 길벗어린이의 작가앨범 시리즈 9번째 작품이다. 초등 1년 이상.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길벗어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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