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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플라이 덕후’의 덕질인가 광기인가

등록 2019-05-10 06:01수정 2019-05-10 19:43

2009년 발생 ‘깃털도둑’ 사건 실화
당시 판결에 의문 품고 실체 추적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탐욕 성찰
깃털도둑-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흐름출판·1만6000원

2009년 6월23일 밤,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60㎞쯤 떨어진 트링에 있는 트링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 표본을 소장한 이곳에 에드윈 리스트(당시 19살)가 여행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런던의 명문 음악 교육기관인 왕립음악원에 다니는, 앞날이 밝은 플루트 연주자였다. 이날 밤 그는 박물관 담장을 넘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캐비닛들을 털어 16종의 새 표본 299점을 쓸어 담았다. 24일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유유히 런던으로 돌아갔다.

트링박물관에서 299점의 새 표본을 훔쳐 인터넷으로 판매한 에드윈 리스트가 2010년 11월26일 영국 헤멀헴프스테드 치안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트링박물관에서 299점의 새 표본을 훔쳐 인터넷으로 판매한 에드윈 리스트가 2010년 11월26일 영국 헤멀헴프스테드 치안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흐름출판 제공
<깃털도둑>은 이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저자인 커크 월리스 존슨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파괴된 이라크 도시 재건을 위해 활동하다 사고로 죽을 뻔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었다. 이후에도 2500여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미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난민 지원 활동을 해 왔다. 심신이 지친 그를 “구원”한 것은 ‘플라이 낚시’(깃털 등을 바늘에 입혀 곤충 모양으로 만든 미끼인 ‘플라이’를 전용 낚싯줄에 달아 낚싯대로 물고기가 있는 수면에 날려 보내 물고기를 유인해 낚는 낚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온다)였는데, 2011년 뉴멕시코주에서 낚시 가이드한테 에드윈 리스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후 그는 5년여간 리스트의 범행 동기와 공범 여부, 도난당한 깃털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집착과 탐욕의 문화사가 펼쳐지고, 희귀·멸종위기 종의 불법거래 행태도 폭로된다.

지은이는 찰스 다윈(1809~1882)과 함께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주창자로 기록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리스트가 훔친 표본 가운데 월리스가 가장 아꼈다는 왕극락조 37마리가 있었다. 월리스는 말레이제도에서 많은 표본을 채집하고, 시간·장소 등 자세한 정보를 기록해 뒀다. 월리스는 박물관에 최대한 많은 표본을 소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새 가죽에는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숨어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저히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의 바람과 달리 대영박물관은 1·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받았고, 큐레이터들은 월리스와 다윈의 새 표본들을 시골로 옮겼다. 트링에 있는 사설 박물관도 하나였다. 이 박물관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월터 로스차일드가 21살 때 아버지한테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월터는 큰돈을 쏟아부어 표본을 수집했다. 그가 고용한 400명 가까운 수집가들은 목숨을 걸고 표본을 찾아나섰다. 그들의 ‘자연 파괴’는 ‘새 발의 피’였다.

1900년대 큰극락조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간 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의 모습. 흐름출판 제공
1900년대 큰극락조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간 모자를 쓰고 있는 여성의 모습. 흐름출판 제공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마리의 새들이 인간의 손에 죽었다.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여성들의 모자는 “새들의 공동묘지”였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4만5000t에 이르는 깃털이 수입됐다. ‘깃털처럼 가볍다’는 말을 한번 떠올려 보라. 얼마나 많은 새들이 생명을 잃었을지….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들이 깃털 매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여성들과 환경운동가들이 승리했다. 197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맺어졌다.

귀족 한량인 조지 모티머 켈슨이 1895년에 낸 <연어 플라이>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연어 플라이. 플라이 모양이 발달하면서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플라이에 붙기도 했다.  흐름출판 제공
귀족 한량인 조지 모티머 켈슨이 1895년에 낸 <연어 플라이>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연어 플라이. 플라이 모양이 발달하면서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플라이에 붙기도 했다. 흐름출판 제공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희귀한 깃털을 거래하며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빅토리아 시대’(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837~1901년 이른바 ‘대영 제국’의 절정기)의 ‘예술’을 구현하는 연어 플라이를 만드는 이들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때는 희귀한 깃털들로 만들어진 플라이가 신분을 보증했다. “귀족 부인들이 누구의 모자가 더욱 희귀한 깃털로 장식되었는지를 경쟁하는 동안 남편들은 그 깃털을 낚싯대에 묶어 자랑했다.” 이런 ‘전통’을 이어가며 20세기 후반 ‘플라이 타이어’들이 등장했다. 플라이를 만드는 것을 ‘타잉’(tying), 타잉하는 사람을 ‘타이어’(tier)라 한다. 대부분 낚시도 하지 않고 낚시하는 법도 몰랐지만 플라이에 집착했다. ‘희귀한’ ‘진짜’ 깃털들로 만든 플라이가 이들의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연어 플라이를 예술작품으로 생각했다.” 에드윈 리스트가 그랬다. 1999년 늦여름, 아버지가 틀어놓은 비디오를 본 이후 타잉에 푹 빠졌고, ‘플라이 타잉의 미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는 2007년 왕립음악원에 입학해,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2009년 트링박물관에서 새 표본들을 훔치고, 희귀한 깃털들을 인터넷에서 팔았다. 범행 507일 만에야 체포됐다. 박물관과 검찰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역사적·과학적 가치’를 지닌 새 표본을 파괴한 리스트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이유로 그를 집행유예로 풀어준다. 특정한 것에 대한 집착이 통제불능 수준이어서 행위의 결과가 어떨지 생각지 못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판결에 의문을 품고 독자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간다. 리스트가 훔친 299마리 새들이 전부 다 박물관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3년 동안 인터뷰를 거절했던 리스트를 만나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로 가고, 공범으로 의심했던 인물을 노르웨이로 찾아가 만난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에드윈 리스트가 인터넷에 판매한 ‘혼합세트’. 집까마귀와 푸른채터러를 포함한 여러 종과 아종으로 구성된 이 혼합세트는 리스트가 체포되기 전날 밤에 인터넷 판매 게시판에 올라왔다. 흐름출판 제공
에드윈 리스트가 인터넷에 판매한 ‘혼합세트’. 집까마귀와 푸른채터러를 포함한 여러 종과 아종으로 구성된 이 혼합세트는 리스트가 체포되기 전날 밤에 인터넷 판매 게시판에 올라왔다. 흐름출판 제공
책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면서도 아름다움 또는 명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성찰하게끔 한다. “새 가죽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키워주고자 노력했던 과학자들이 있다. (…)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자연은 이 순간에도 파괴되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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