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섭 지음/한겨레출판·1만4000원 때는 18세기 조선 정조대. 죽은 남편이 남긴 객주를 20년간 운영해온 한 여성이 집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된다. 시신에 수의를 갈아입히고 유품을 정리하던 화연은 객주의 청지기로부터 죽은 여인의 사연을 듣는다. “과부가 혼자 살면서 바깥일을 한다고 온갖 소문이 돌았거든요. 무뢰배들이 시시때때로 괴롭혀서 아예 안채는 밖에서 들여다볼 수조차 없게 하셨습니다.” 여성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던 것도 잠시, 곧 화연은 여성의 시신과 집 안 곳곳에서 이 사건이 자살로 위장된 타살이라는 증거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죽은 여인들을 위해 일하는 유품정리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책 <유품정리사: 연꽃 죽음의 비밀>은 현대 사회에 등장한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18세기 조선 시대로 옮긴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화연의 아버지는 역모를 의심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화연은 당시 사건을 담당한 포교로부터 죽은 여인들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는 일을 제안받는다. 아버지의 죽음과, 유품정리사인 화연이 마주한 조선 시대 여성들의 죽음은 소설의 서사를 이끄는 두 축이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조선 여성들의 삶엔 여성으로서 당해야 했던 차별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누군가는 일찍 죽은 남편에 대한 수절을 강요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름에 빠진 남편의 판돈을 대신한다. 저자는 여성의 죽음을 주요 소재로 내세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죽음은 장엄하고 정중한 반면, 힘없고 약한 자들의 죽음은 비참하고 스산하다. 조선이라는 세상에서 여성과 아이, 노비들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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