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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 괴짜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

등록 2005-12-22 19:10수정 2005-12-23 15:09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피터 F. 오스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어느 한 편으로 기울거나 치우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평의 전제가 되는 “불신의 자발적 정지”와 비평 대상과의 거리 두기도 마찬가지다. 아주 호의적이거나 너무 박정해도 곤란하다. 평전 작업 또한 균형잡힌 비평의 원칙과 따로 놀지 않는다. 물론 전기작가가 손쓸 여지가 좁은 붓다 같은 인물의 전기 서술에서까지 엄격한 균형감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바람직한 비평의 원칙은 우리와 동시대 사람의 평전을 쓸 때 특히 유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피터 오스왈드와 <프란츠 파농>(실천문학사)을 지은 알리스 셰르키는 닮았다. 정신과 의사로 직업이 같은 두 전기 작가는 서술 대상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오스왈드의 경우, 일정한 거리감은 글렌 굴드의 ‘공식적인 인간상’과 ‘개인적인 자아’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스왈드가 굴드와 의사 대 환자의 관계를 맺지 않아 정말 다행스럽다.

두 전기 작가는 평전 대상의 배경지식 또한 풍부하다. 셰르키는 격동의 알제리에서 젊은 날을 보냈다. 오스왈드의 바이올린 켜는 솜씨는 전문 연주자 버금간다. 셰르키가 정신의학과 정치가 긴밀히 결합된 파농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풀어낸다면, 오스왈드는 굴드의 생애를 “심리학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 자세하게 탐구한다.”

이 책에 그려진 굴드는 역설과 모순의 뒤범벅이다. 그는 괴짜 천재다. 나는 재능을 타고난 이들의 돌출 행동에 너그럽지 못하다. 그의 기벽은 천재 예술가의 그것으로 보기에도 도가 지나치다. 건강을 염려하는 증세가 심한 탓에 한여름에도 옷을 두껍게 껴입고 다닌 건 안쓰럽다. 무대공포증 때문에 일찍 공개연주 활동을 접은 건 안타깝다. 더욱이 굴드가 엉뚱한 분야에다 힘을 소모한 것은 꽤 아쉽다.

경쟁을 몹시 싫어하고 꺼린 굴드가 실제로는 극도의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한데 무슨 조화 속인지 죽은 뒤 사람들 기억에 남는 최후의 경쟁에서 굴드의 우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굴드는 25년 안짝에 세상을 떠난 피아노 연주자 가운데 지명도가 가장 높다. 그의 조국 캐나다에서는 준 성인으로 받들 정도다. 또 오스왈드는 고독을 추구한 굴드가 실제로 얼마나 고독했을지 의문을 표시한다.

하지만 굴드의 인간적 매력을 말하는 증언도 적잖다. “그에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겸손함이 분명 있었다.” “글렌은 퍽 따뜻하고 매우 자연스럽고, 그리고 아주 잘난 체도 하지 않았어.” 오스왈드는 굴드의 상반된 성격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로 쇤베르크의 급진성을 옹호하는 동시에 보수주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편든 점을 든다. 아무튼 굴드는 비디오에 걸맞은, 시대를 앞서간 피아노 연주자가 아닐까. “그의 뛰어난 연주를 제대로 잘 감상하려면 비디오테이프나 레이저디스크로 음악과 함께 황홀경으로 치닫는 그의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럴 때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그리고 건반은 마술처럼 일체가 되어 굴드가 연주하는 음악은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비로운 차원의 영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듯하다.”


굴드가 1955년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듬해 출반돼 대박을 터뜨린다. 1981년 다시 녹음한 <골드베르크> 음반을 튼다. 첫 곡 ‘아리아’에 깔려 있다는 굴드의 읊조림이 들리지 않는다. 소리를 키우자 낮은 웅얼거림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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