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정혜윤의 새벽 세시 책읽기
스테판 말테르 지음, 용경식 옮김/제3의공간(2017) 6월초 피디(PD)연합회 연수차 미얀마에 다녀왔다. 미얀마는 과연 탑들의 나라다웠다. 어딜 가나 황금빛 탑이 보였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아침 바람결에 들려오는 새소리와 범벅된 풍경소리였다. 금처럼 빛나는 생각이 바람에 실려 사방에 날아가길 바라는 미얀마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풍경소리라고 들었다.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 근처에서 등에 커다란 별 문양이 찍힌 코끼리떼를 만났다. 현지에서 들은 말에 따르면 미얀마의 야생코끼리는 국가 차원에서 관리된다고 한다. 코끼리를 보자 생각나는 작가가 있었다. 조지 오웰이었다. 영국의 이튼 고등학교를 나쁜 성적으로 졸업한 조지 오웰은 영국령 미얀마의 경찰시험에 합격한다. 때는 1920년대 중반, 숲에 호랑이와 표범이 어슬렁거리던 시절이었다. 별로 잘하는 것도 없는 고등학생에서 갑자기 제국의 경찰이 된 조지 오웰은 스물한 살에 불과한데도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사람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고 늙은 농부들을 모욕하고 화날 때 하인들을 두들겨 팰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뭔가에 ‘눈을 뜨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아침 코끼리 한 마리가 거리에 나타나 오두막, 나무, 마차 등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사람뿐만 아니라 암소들까지 짓밟고 다닌다는 신고를 받은 것이다. 조지 오웰은 커다란 총으로 무장을 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코끼리 사냥을 할 경찰관 조지 오웰을 따라나섰다. 코끼리는 논에 있었다. 조지 오웰은 코끼리가 다소 진정된 것 같아 죽이지 않을 결심을 하지만 군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무기를 갖지 않은 수많은 원주민 앞에 총으로 무장한 백인으로 나는 거기에 있었다. 겉보기에 나는 그 상황의 중요한 주인공 같았지만 사실 내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 2000명의 사람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손에 무기를 들고 이 길을 달려왔는데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에 만족하며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군중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는 코끼리를 쏠까 말까 자신의 양심과 싸운다. 그리고 군중의 기대에 부응하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코끼리를 쏜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부겐빌리아의 보라색, 하이비스커스의 진홍색, 중국꽃의 빨간색 등 어떤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다른 것에 눈을 뜬다. 코끼리를 쏜 사건을 겪고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과연 참을 수 없는 것에 익숙해지고 완벽한 제국주의자가 될 때까지 미얀마에 남아 있어야 할까?’ 우리는 그의 선택을 알고 있다. 그는 경찰관직을 사직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이 한 많은 일들이 ‘정말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작가가 되었다. <버마시절>을 썼고 <동물농장>을 썼고 <1984>를 썼다. 그는 미얀마에서 코끼리를 어떻게 죽였나를 결코 잊지 않았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갖가지 형태와 싸웠다. 나는 그가 <동물농장>의 작가여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을 정말로 괴로워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로 괴로웠다’는 말이, 그 감정의 진실함과 강렬함이 금처럼 빛난다. 정말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드물어지는 것이 정말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자기 삶의 가장 괴로운 기억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1925년 세 발의 총을 맞고 죽은 코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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