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로마질 샤이에 글·그림, 정진국 옮김/길찾기·5만2000원
서기 314년, 로마 제국은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변방 ‘야만족’들의 침입과 속주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했다. 치안이 안정됐고, 경제는 호황이었다. 지중해권 전역에서 각양각색의 사람과 물산이 흘러들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해 지지 기반으로 삼고, 보스포루스 해협의 비잔티온(지금의 이스탄불)을 신도시로 단장해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하고 수도를 옮긴 것도 이 시절이었다. 뒷날 역사가들이 비잔티움 제국, 또는 동로마 제국으로 부르게 될 터전이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다양한 신전이 모여 있는 거리를 재현한 그림. 길찾기 제공
프랑스의 만화가이자 역사 작가인 질 샤이에가 2004년 출간한 <황제들의 로마>는 천년 제국의 심장부 로마의 모습을 생생한 조감도로 재현한 책이다. 로마에 흠뻑 빠진 지은이는 수십 년간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8000시간을 들여 4세기 로마의 전체 지도를 세밀한 그림으로 묘사했다. 책에는 가로 120㎝, 세로 88㎝의 초대형 그림지도가 부록으로 끼워져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다양한 신전이 모여 있는 거리를 재현한 그림의 설명도. 길찾기 제공
샤이에의 펜으로 복원된 로마는 실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거대한 원형경기장 5곳과 모의 해전장 2곳, 37개의 성문과 43개의 대리석 개선문, 19개의 수도교와 1352개의 샘터, 28개의 도서관과 967개의 공중목욕탕에, 제국 전체의 모든 신을 모신 신전이 200곳에 이른다.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 첨탑 6점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22개의 황금기마상과 80점의 황금신상에 더해, 시내 곳곳에 3000점이 넘는 조각상이 넘쳤다. 지은이는 “화려한 기념물들로 치장된 뒤안길에, 힘겹게 일하며 살아가는 로마”의 이면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병영 22곳, 국영 빵집 204곳, 부자의 개인저택 1790채와 세입자 공동주택 4만6602동, 화류계 여성들이 값싼 웃음을 흘리던 공창 46곳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반도 최남단에서 시작한 아피아 가도를 지나 로마의 남쪽 관문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퀸틸리우스 장원 인근의 님프 성소 일대 풍경을 복원한 동판화. 길찾기 제공
이 책은 그러나 단순한 그림지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지은이는 로마 명문 니코마쿠스 가문 출신의 플라비우스라는 가상인물을 ‘쿠리오숨’(로마여행 안내자)으로 내세워, 황궁과 콜로세움, 전차 경기장 같은 웅장한 공공 건축물에서부터, 상인과 야바위꾼이 호객하고 투기꾼이 노름하는 뒷골목까지 로마의 외관과 속살을 샅샅이 탐사한다.
고대 로마 제국의 중심지 포룸에 있던 칼리굴라 궁 일대를 재현한 그림. 길찾기 제공
도시 전역을 지역별로 세분해 확대경처럼 들여다보고, 로마인의 일상을 상상력으로 복원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치 한 편의 기록영화를 보는 것 같다. 검투사 경기장의 환호, 광대의 묘기와 재담, 빵 굽는 냄새, 온천장의 수증기, 짤랑거리는 동전 소리, 여사제에게 신탁을 받는 사람들과 뒤섞이다가 까마득한 옛 로마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걱정할 건 없다. 이미 이 시절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로마 도심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재현한 모형의 내부 모습. 길찾기 제공
315년 로마 도심에 완공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 제국의 영광을 간직한 채 1700년 동안 건재하다. 길찾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