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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본 선거결과를 보며 소세키를 읽는다

등록 2019-07-26 06:00수정 2019-07-26 20:09

[책과 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현암사(2014)

지난주 태평양전쟁에 책임을 지고 전범이 돼 처형당하거나 구속된 ‘조선인’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비가 오락거리는 날씨는 선선했다. 도쿄 긴자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지금은 번화가인 긴자 거리에 서자 환영처럼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1945년 일본은 패망했다. 제국의 군인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돌아오면서 군인들이 동남아에서 한 입에 담기도 힘든 충격적인 행위들이 본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쟁중에 수많은 비일본 여성을 위안부로 삼았다는 것, 군대가 강간을 일삼았다는 것 등도 알려졌다. 9월 초 주일연합군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와 미군이 도쿄만을 통해 들어왔다. 자신이 한 짓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일단 미군이 상륙하면 적군은 여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강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 정부는 발빠르게 해결책을 마련했다. 점령군 전용 위안부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것으로, 소수의 여성이 방파제가 되어서 민족의 순결과 나머지 선한 일본 여성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얼마 뒤 긴자 거리에 ‘신일본 여성들에게 고함’이란 거대한 간판이 걸렸다. ‘전후처리를 위한 국가적 긴급 시설의 일환으로서 진주군 위안이라는 대사업에 참가할 신일본 여성들의 솔선수범을 청한다.’ ‘18세에서 25세 사이 여성 사무원, 숙식 및 의복 제공’이란 내용이었다. 찾아온 여성 중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밝힌 사람들도 있었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라디오 방송이다. 1946년 거리 인터뷰로 큰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 있었다. 긴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방송하는 구성이었다. 모두가 너무나 궁금한 바로 그 질문은 바로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사세요?’였다. 식량문제는 전쟁 말기부터 심각했었다. 단백질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잘 말린 생쥐와 집쥐는 좋은 대안으로 마치 작은 새와 같은 맛이 나지만 뼈를 먹으면 체중이 준다는 관찰 결과가 있으니 뼈만은 먹지 말라는 세부사항까지 적혀 있었다. 비참한 일이었다.

먹고 살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고 책이란 것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골랐다. 개인의 마음을 강조한 나쓰메 소세키의 글들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 그의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뭐라도 하라고 하지만 그는 통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세상 탓이지. 일본은 서양에서 빚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나라야. 그런데도 선진국이라도 자처하고 있지. 억지로라도 선진국 대열에 끼려고 하지… 소하고 경쟁하는 개구리처럼 아예 배가 터지고 말 거야. 그 피해는 모두 우리 개인이 입게 될 테니 두고 보게. 모두 빡빡하게 교육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버리지. 자신의 일과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나쓰메 소세키가 이 글을 쓴 것은 1909년이지만 40년 뒤의 독자들은 ‘배가 터져버릴 거야’란 말을 현실에 대한 예언처럼 받아들였었다. 전쟁금지 규정이 있는 평화헌법 개정을 전면에 내건 일본의 선거를 보면서, 전쟁 전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보면서 다시 백십년 전의 이 글을 떠올린다. 지금 일본의 독자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까?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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