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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복수의 민족주의가 존재하는 까닭

등록 2019-07-26 06:01수정 2019-07-26 20:13

민족주의들-한국 민족주의의 전개와 특성
전재호 지음/이매진·1만6000원

외부의 자극에 내부는 결집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지금의 반일 정서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여행예약 취소, 자발적인 일본 규탄 촛불집회까지, 시간이 갈수록 그 열기가 달아오르는 형국이다. 일련의 움직임들이 아래로부터 조직된 자발적 대중운동의 형태를 띤다는 점도 특징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데는 그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일본은 북한과 더불어 ‘한국 민족주의’를 움직여온 양대 구동축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족주의는 외세(주로 일본)의 자극에 반응해 태동했고,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을 거치며 분화했다. 정치학자 전재호가 쓴 <민족주의들>은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학’이다. 이념·담론의 갈래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탄생과 발전, 분화 과정에 얽힌 권력의 작동 기제를 함께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계보학은 다분히 ‘푸코적’이다.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무역보복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제품 판매중지 및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무역보복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제품 판매중지 및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책이 파악한 한국 민족주의는 국권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등장한 만큼, 자유주의와 결합한 서구의 ‘시민적 민족주의’와 달리 처음부터 국가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게 20세기 초반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중국의 역사 대신 ‘조선사’를 구성했고, 외세를 물리친 인물을 ‘민족영웅’으로 발명했고, 한글을 ‘민족언어’로 자리매김하고 국토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고, 언론매체 발행과 교육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20세기 초에 이르러 “민족의 시조로서의 단군과, 혈통적 동질성에 기초한 ‘단일민족’ 의식이 확립”됐다는 게 글쓴이의 진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전후복구, 경제개발과 세계화 시기를 거치며 한국(남한)의 민족주의 역시 균열·분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권의 상실과 일본의 지배는 조선인이 자신을 ‘일본민족과 구별되는 조선민족’으로 인식하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족의 ‘종족적 요소’(언어·문화·종교 등)가 ‘시민적·정치적 요소’(민족 구성원이라는 주관적 의지)를 압도하게 됐다. 하지만 전쟁을 겪고 분단체제가 공고화하면서, 종족적 민족 개념은 약화하고 정치적 민족 개념이 부상했다. 특히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불어넣었고, 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정치적 정체성을 강화함으로써 “반공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발전”이 한국 민족주의의 핵심 담론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이 책은 기술한다.

이 책은 베네딕트 앤더슨과 에른스트 겔너, 에릭 홉스봄의 견해에 따라 민족주의를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초로, 민족의 통합과 발전, 자긍심의 고양 등을 지향하는 이념이자 운동, 담론”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더 중요하게 천착하는 지점은 “민족주의는 독립과 발전 등의 지향성만 지닐 뿐, 이 목적을 달성할 구체적 방법은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그 ‘방법’을 지닌 다른 이념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이차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띤다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민족주의가 결합하는 다른 이념은 자유주의일 수도, 사회주의일 수도, 반공 국가주의일 수도 있다. 책의 제목이 ‘민족주의들’인 이유다.

이 책에 담긴 또 다른 메시지는 민족주의에 대한 ‘규범적’ 이해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복수의 민족주의 담론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특정 목표와 결합한 담론만을 민족주의라고 정의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복수성을 간과하는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통일에 미온적이거나 일본에 적대적이지 않다고 해서 상대방에 섣불리 ‘반민족’ ‘친일’의 낙인을 찍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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