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률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 운영위원회 위원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종도서의 선정과 운영 전반에 대한 공청회를 올 연말에 할 계획입니다. 과거엔 세번에 걸친 심사 과정에서 정치적인 외압이 행사되어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뒤집는 결과도 있었죠. 이번에는 ‘강화된 1단계’ 심사로 그런 위험을 차단할 계획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탓에 공정성과 투명성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세종도서 사업 제도가 최근 바뀌고 있다. 세종도서는 정부가 전국 공공도서관 등에 비치할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종당 1천만원까지 구매해주는 사업이다. 해마다 1200여종의 도서를 선정하는 출판계의 대표적 공공사업으로 1968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이 사업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도서 선정작에 대한 이념 편향 논란을 시작으로 블랙리스트 실행 대상으로 전락했다. 운영 주체도 민간단체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부침이 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과의 지시에 따라 특정 작가의 작품이 배제되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기도 했고 선정의 신뢰성에도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사업을 진행해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회는, 다소 늦었지만 운영 사항 전반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세종도서 선정·구입 지원사업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지난 5월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도서관, 독서단체, 법률가, 언론인, 출판인 등 각계 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출판의 기본 정신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정성, 합리성, 공적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합의하고 제도 전반을 검토했다.
1년 임기로 이 위원회를 이끄는 박영률(62·커뮤니케이션북스 대표) 위원장을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출판계의 예민한 사안인데도 “정부 예산을 집행하는 일이니 질문이 들어오면 대답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선뜻 인터뷰에 응했다. 제도 개선 사항은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위원회가 늦게 구성돼 사업 공고와 도서 접수가 예년에 견줘 많이 지연되었습니다. 5월 첫 회의 이후 매주 회의를 거쳐 총 13가지 문제점을 발견했고 그중 당장 고쳐야 할 시급한 문제 9가지를 수정했습니다. 신청, 심사, 보급으로 나뉘는 세종도서의 ‘3대 구조’ 전 과정을 손본 셈이죠.” 예전에는 신청에 제한이 없었고 선정 상한선은 2017년까지 출판사당 25종이었던 것을 지난해에 교양, 학술 각각 8종으로 바꿨다. 위원회는 이번 사업부터 출판사당 지원 신청 가능한 책의 종수를 최대 20종까지(납본 종수 200종이 넘는 출판사는 10%)로 제한하고, 선정 가능 종수도 출판사당 8종(분야별 4종)으로 한정했다. 70여명이던 심사위원 수도 20~25% 늘려 심사위원 한 사람당 검토해야 할 책의 수를 줄였다.
“가장 중요한 제도 변화라면 역시 심사 방법입니다. 문제가 된 ‘밀실 선정’을 바로잡는 데 주력했습니다. 동일한 심사위원들이 세차례에 걸쳐 하던 심사는 중간에 외압 등으로 흔들릴 가능성도 그만큼 컸죠. 이번엔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단 한차례 심사를 통해 위원들이 서로 견제하고 합의하도록 했습니다.”
불분명했던 선정기준도 이참에 손보기로 했다. 위원회가 초안을 잡은 ‘공통 선정기준’의 뼈대를 보면, 기획과 내용 그리고 디자인 부문에서 시의성, 완결성, 실험성, 예술성 등이 포함된다. 책의 완결성과 충실성을 보는 건 기본이거니와 참신성이나 도전성이란 가치를 높이 사 출판과 독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지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박 위원장은 “기존에는 베스트셀러가 선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용이 좋으나 많이 팔리지 않는 책을 발굴해 보급하는 것에 중점을 두려 한다”고 말했다.
보급처 문제도 개선했다. 박 위원장은 “정말 필요한 곳에 적절한 책이 제공될 수 있도록 공공도서관 등 기존 보급처 2500여곳을 전수조사해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시민과의 접점을 만드는 ‘저자와의 만남’ 같은 지원사업도 벌일 예정이다.
다만 최근까지 의견 대립이 팽팽한 세종도서 사업 운영 주체 논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출판사 705곳을 회원사로 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블랙리스트 실행에 개입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완전히 손을 떼고 운영을 전적으로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간이 중심이 되고 진흥원이 운영을 지원하는 ‘민관협치 모델’을 지지하는 쪽도 있다. 박 위원장은 “지금까지 논의가 분분했던 이유는 각각 제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위원회도 기존 세종도서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데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의 기본 취지와 결과를 놓고 연말에 공청회를 할 텐데, 그때 민간 운영이 맞는지 민관협치가 맞는지 실제 증거를 갖고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글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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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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