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워크-모든 일과 직업의 모습이 바뀐다 메리 그레이·시다스 수리 지음, 신동숙 옮김/한스미디어·1만8000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사는 조앤은 무릎 수술을 받은 뒤 병약해진 어머니를 돌보며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아마존이 만든 ‘엠터크’(아마존 미케니컬 터크) 플랫폼에서 일을 구한다. 엠터크는 일손이 필요한 의뢰인이 다양한 직무를 게시하면 노동자들이 지원해 보수를 받고 일하는 일종의 ‘온라인 노동시장’이다. 조앤은 이른바 ‘음경 사진’ 관련 작업으로 돈을 번다. ‘성인물 등급’ 사진이므로 솎아내야 할지, 무해한 ‘일반 등급’ 사진이므로 내버려 둬야 할지를 판단한다. 작업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은 스스로 정한다. 매일 평균 10시간 정도 일해 40달러를 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임시직 노동자들은 인공지능 혁명의 숨은 주역이지만, 이들과 이들의 노동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사용자들이 남기는 모든 콘텐츠를 자동으로 확인할 수 없어, 조앤과 같은 ‘인간’ 노동자들한테 의지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성인물을 걸러낸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수십억 명이 웹사이트 콘텐츠, 검색엔진의 지식검색, 트위터, 포스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비한다. 사람들은 그런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정보기술(IT)의 대단한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술들은 사실 세계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풀타임이나 파트타임 고용직이 아니라 자유 계약직이나 임시직이 대부분인 이런 노동자들에게는 인정된 법적 지위가 없다.”
인류학자인 메리 그레이와 컴퓨터공학자인 시다스 수리가 쓴 <고스트워크>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데도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인공지능의 그늘”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형태의 일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루며, 이런 노동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할 방안을 찾아본다. 대기업이 정규직 직원을 고용하는 관행이 사라질 날은 머지않았고, 전 세계 직업의 60%는 2055년까지 일종의 ‘고스트 워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웹사이트, 인공지능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 투입되는 인간 노동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으며, 사실 의도적으로 감춰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불투명한 고용 분야를 우리는 ‘고스트 워크’(ghost work)라고 부른다.”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노동이 감춰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임시직 노동자들이 데이터를 제공해 ‘인공지능 혁명’의 숨은 주역이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엠터크 등 네 가지 고스트 워크 플랫폼을 분석하며, 온디맨드(on-demand: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통해 수요에 맞춰 맞춤형 제품·서비스를 제공) 노동 인력의 규모가 가장 큰 인도와 미국 노동자들의 사례를 살핀다. 퓨리서치센터는 2016년 미국 성인 중 2000만명 정도가 전년도에 필요에 따라 지원자를 모집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유형의 일을 담당할 임시직 노동시장이 새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자동화의 가장 큰 역설은 인간의 노동을 없애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인간을 위한 일이 항상 새로이 생긴다는 점이다.” 자동화가 완수되는 ‘최종단계’가 언젠가는 끝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자동화 최종단계의 역설’이라고 한다. “경제와 고용의 미래는 로봇이 인간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쥐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보다는 요즘 시대의 온디맨드 경제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크다.”
기업들은 온라인 노동시장을 통해 훨씬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고스트 워크가 정규직 업무를 대체한다. “인간 노동자들은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비친다. 에이피아이(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덕분에 노동자들은 이름과 얼굴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일련의 문자와 숫자로 표현되는 존재가 됐다.” 온디맨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데도 “무가치한 사람들”로 평가받는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고 호소할 기회가 없고, 때로는 보수도 날린다. ‘알고리즘의 무자비성’ 때문이다. “플랫폼과 의뢰인들 모두에게 활용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너무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완료한 일을 평가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과정의 여러 복잡한 상황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일감을 얻으려 극도의 경계,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이른바 ‘유연성’은 속 빈 강정일 수 있다. “플랫폼들은 노동자들이 계정에서 탈퇴하는 것 외에 다른 식으로 작업 조건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을 상세히 밝힌 경우가 거의 없다.” 플랫폼이 접속할 권리, 즉 누가 돈을 벌 수 있고 벌 수 없는지를 결정한다. 미국 온디맨드 노동자의 30%가 했던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밝힌 조사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고스트 워크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괜찮은 일자리가 없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측면 외에도 “어찌 됐든 자신의 운명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고 당대의 전문 직업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은 욕구”도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여성, 장애 등을 구실로 직장 내 차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차별받지 않고 일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온디맨드 노동은 본질적으로 나쁜 직업은 아니다. (…) 온디맨드 노동을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 중인 고용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소프트웨어 뒤에 감춰진 채 무관심하게 방치하면 온디맨드 노동이 인정받지 못하는 고스트 워크로 순식간에 탈바꿈하기도 한다.”
온디맨드 노동 플랫폼을 설계한 이들은 사용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저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고립된 상태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들만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 교류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동자들끼리 뒤에서 협력하지 않고서는 온디맨드 플랫폼이 운영되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동료들의 네트워크가 없다면 노동자들이 이 일의 고되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자들은 이익만을 추구하며 사고가 났을 경우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대부분 기업과 달리 노동자를 우선시하는 기업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더 나은 일자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온디맨드 협업 공간’, 간편한 노동자 평가 시스템 구축,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등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저자들은 “아직은 일자리들을 인공지능의 그림자 밖으로 꺼내서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공정하고 품위 있는 직업으로 만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고스트 워크를 어둠 밖으로 끌어내자고 한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