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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다산 키운 팔할, 정조와 천주교”

등록 2019-08-30 05:59수정 2019-08-30 20:03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쓴 ‘젊은 날의 다산 정약용’ 평전 2권
“박제화하거나 가톨릭 신자 만들 생각 아냐…그도 고뇌하는 한 청춘이었다”
파란 1, 2-정민의 다산독본
정민 지음/천년의상상·각 권 1만7500원

‘모던한 감각으로 무장한 고전학자’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쓴 다산 정약용(1762~1836) 평전이 나왔다. <다산선생지식경영법>(2006) <다산의 재발견>(2011) <다산 증언첩>(2017) <다산의 제자 교육법>(2017)을 쓰면서 10년 넘게 다산의 자료와 사투를 벌여온 정 교수가 이번엔 40살 이전까지 ‘젊은 다산’을 파고든다. <파란: 정민의 다산독본>은 다산의 글, 로마교황청 문서, 조선 천주교 관련 연구 기록과 논문들을 치밀하게 겹쳐 읽으며 다산이 글로 남기지 않은 진실을 추적한다. 정치적 야심가, 지적 포식자, “직진형 투사”로서 다산의 청춘은 알려지지 않은 만큼 생경하기까지 하다. 특히 천주교와 다산의 관계를 밝힌 대목은 논란을 예고한다. 다산은 첫 한국인 영세자 이승훈(1756~1801)이 임명한 10인의 신부 중 한 명이었고, 최초의 외국인 신부인 주문모 야고보(1752~1801)를 구출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다산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은 지적 호기심이었을 뿐이며 배교 뒤 유학자로 돌아왔다는 국학계의 주장과 자의 반 타의 반 신앙의 휴지기가 있었을지언정 죽을 때까지 신심을 갖고 있었다는 가톨릭계의 주장이 홍해처럼 쩍 갈라진 현실에서 정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간다.

한국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는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하곤 했다. 그림은 김태 화가의 <명례방 집회>. 1984년. 천년의상상 제공
한국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는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하곤 했다. 그림은 김태 화가의 <명례방 집회>. 1984년. 천년의상상 제공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 한국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자생적으로 교회를 창립했기 때문이다. 북경 성당에서 이승훈이 세례를 받은 지 6년 만인 1789년 무려 1000명의 신자가 생겼고 1799년 무렵에는 1만명에 달했다. 정 교수는 천주교 교리가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당시 민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미륵 신화, <정감록> 신앙, 피난지를 가리키는 십승지 풍문보다 간결하고 힘이 있었다고 본다. 허무맹랑하지 않고 도덕적이면서도 차별과 억압, 폭력이 없는 세상이라는 희망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순교자비망기> 본문.
다블뤼 주교의 <조선순교자비망기> 본문.
다산은 1784년 자청해 세례를 받고 약망(若望·요한)이라는 본명을 얻었다. 한때 과거 시험도 망설일 만큼 천주교 공부에 몰두했지만 정조의 기대에 따라 배교했다. 그렇다면 다산의 종교 활동 기록은 왜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가? 그가 한창 천주교 활동에 열을 올린 1785년부터 1787년까지의 기록은 온통 그가 성균관 유생으로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내용뿐이다. 정 교수의 추론을 보면, ‘메모광’ 다산은 엄청난 정치적 행위로서 치밀한 기록을 남겼지만 자기 검열을 통해 불리하고 불편한 내용을 삭제했으며 자신의 손으로 천주교 활동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없앴다.

1988년 다산의 것이라고 주장되었던 인장. 측면에는 성모마리아상까지 새겨놓았으나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민 교수는 1980년대 천진암 성지가 개발되던 때 이곳에 팔아먹으려고 만든 가짜라고 추정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1988년 다산의 것이라고 주장되었던 인장. 측면에는 성모마리아상까지 새겨놓았으나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민 교수는 1980년대 천진암 성지가 개발되던 때 이곳에 팔아먹으려고 만든 가짜라고 추정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다블뤼 주교의 <조선순교자비망기> 표지. 그는 이 책에서 다산에게 천주교 교리를 전한 이벽의 상황과 심리상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경과를 묘사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다블뤼 주교의 <조선순교자비망기> 표지. 그는 이 책에서 다산에게 천주교 교리를 전한 이벽의 상황과 심리상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경과를 묘사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천주교학과 유학의 공존, 이 가운데 다산을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인으로 다시 돌아온 것과 그의 경학 연구 사이에 특별한 모순 관계가 없다는 가설이 대전제다. 이렇게 보면 다산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의 인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전신으로 받아들여 치열하게 진실을 살다 간 영혼이 된다.”

로마교황청에 보관된 첫 영세자 이승훈의 편지 프랑스어 번역 사본. 1801년 2월18일 이승훈은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을 적에 정약용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 북경의 서양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했다고 한다. 천년의상상 제공
로마교황청에 보관된 첫 영세자 이승훈의 편지 프랑스어 번역 사본. 1801년 2월18일 이승훈은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을 적에 정약용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 북경의 서양인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했다고 한다. 천년의상상 제공
금정역이 있던 충남 청양군의 다락골 줄무덤 성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도의 시신을 몰래 매장한 곳이다. 천년의상상 제공
금정역이 있던 충남 청양군의 다락골 줄무덤 성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도의 시신을 몰래 매장한 곳이다. 천년의상상 제공
‘전달력의 최강자’인 정 교수답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가 이번에도 한몫한다. 내용 면에서도 정조와 남인 그리고 노론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어 긴장감이 소설 못지 않다. 젊은 다산의 남다른 정치적 감각과 판단력도 놀랍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던 젊은이들이 도인술이나 유사종교에 관심을 가졌다가 천주교에 귀의하고 끝내 망나니의 칼날에 쓰러지는 장면은 안타깝고 눈물겹다. 수원 화성 신도시 건설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치밀하게 개혁을 준비했다가 스러져간 정조와 다산의 이루지 못한 꿈도 마찬가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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